사회상식

 

수원 남문 어느 가게에 들렀다가 봉변을 당했다. “담뱃불 끄고 들어오시옷!” 주인의 일갈에 비로소 무심코 손에 피워 든 담배를 발견했다. 순간, 기분이 언짢았으나 이해가 됐다. 이해가 됐을 뿐만이 아니라 좋았다. 기차도 금연칸이 하나만 따로 있었던 것이 지금은 모든 칸이 다 금연칸이다. 비록 끽연권이 혐연권에게 박해 당하고는 있어도, 이런 사회적 변화는 반가운 현상이다.

이에 비해 기초질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금연이 일반화된 것처럼, 기초질서 준수도 일반화됐으면 한다. 한데, 이런 일이 있었다. 수일지하도 건널목에서다. 신호등이 좀 멍청하게 작동돼 행인이 건널 만한데도 빨간 불이 켜 있어 지루하게 만들었다. 그냥 무단횡단할까 했는데 초·중학생들이 마냥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 보는 데서 무단횡단이란 부끄러운 일이다. 학생들이 기특해 보였다.

한일아파트 앞에서다. 서울행 7770 버스 정류장에 갔을 땐 아무도 없어 기다리는 동안 의자에 앉아 담배 한 대를 피웠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10여명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이다. 맨 처음에 가놓고도 할 수 없이 맨 뒤꽁무니에 서고 말았지만, 줄 서는 것이 보기 좋아 조금도 언짢지 않았다. 신호등이 지루해도 기다리는 학생들, 버스 승객 줄 서기 등은 기초질서 준수의 일반화가 그리 머지않다는 반가운 조짐이다.

금연공간 이행, 신호등 지키기, 줄 서기 같은 것은 사회상식의 생활화다. 사회상식의 생활화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상식은 또 일상의 보편적 가치다. 누구든 마땅히 이행하고 지키고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데도 우리 사회는 상식이 통하기보다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사회 지도층, 특히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높은 X들은 막 해 먹는 데, 이쯤 가지고 뭘 그러느냐”는 것은 박연차 게이트가 한창일 적에 어느 교통법규 위반 차량 운전자가 단속 경찰관에게 퍼부은 푸념이었다.

정치인들의 ‘떼법’도 상식 불통의 사회상식 파괴에 큰 영향을 끼친다. 노동운동의 ‘떼법’ 역시 그렇다. 걸핏하면 들고 일어서기 일쑤인 사회적 ‘떼법’이 이에 기인한다.

민초들 사이에 숙성돼 가는 사회상식의 생활화 풍조를, 더는 행세깨나 하는 사람들의 상식 밖 언행으로 찬물을 끼얹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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