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어스름, 퇴근길이었다. 며칠 전 폭설의 영향 때문인지 그날따라 유난히 차량의 흐름이 더뎌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문득 나의 소형 차량 앞에 서있는 화물차량의 문구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담배를 운반하는 차량이었는데 KT&G라는 로고 아래, ‘Korea Tomorrow & Global’이라는 영문자가 적혀 있었다. KT&G의 약자가 저런 뜻이었나? 흡연을 하지 않는 나로서는 당연히 KT&G가 예전의 한국담배인삼공사를 뜻하는 ‘Korea Tobacco & Ginseng’의 약자로만 알고 있었는데, 불쑥 나의 무지에 대한 자책과 함께 호기심이 일었다.
집에 오자마자 인터넷 검색창을 열었다. 먼저, KT&G는 2002년 12월 27일자로 전신인 한국담배인삼공사의 정부 지분 100% 전량 매수하고 현재의 상호로 변경된 사기업으로 주식도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는 이른바 다국적 기업임을 알게 되었다. 또 굴지의 담배회사답게 사회 공헌을 위한 여러 뜻있는 사업을 벌이는 것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나의 관심을 끈 것은 경기도와 KT&G와의 이른바 담배소송 뉴스였다. 내용은 이랬다. 제조량 기준 세계 6위에 해당하는 KT&G가 미국이나 캐나다 등지에 수출하는 담배는 피우지 않으면 스스로 꺼지는 화재안전담배를 제조하여 수출하고 있으면서도, 국내에 판매하는 담배엔 이러한 기술을 전혀 적용하지 않은 일반담배만을 제조 판매해 담배로 인한 화재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요지다. 특히 경기도에서 발생한 화재 중 10%가 넘게 담뱃불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경기도의 재정부담은 796억원에 이르고 있다는 설명도 있었다.
이에 대한 KT&G의 주장도 논리적이다. 소비자 부주의에 의해 발생한 담배화재까지 제조사가 고려하여 담배를 제조할 의무는 없으며, 그러한 위험은 소비자의 최소주의 의무 이행만으로도 방지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일순 수긍이 간다. 그러나 무언가 속는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실제 담뱃불로 인한 화재가 흡연자나 소비자의 과실로 인한 것이더라도, 화재발생가능성과 또 그에 따른 피해를 단 1%라도 줄일 수 있다면 기업은 이윤추구 목적 달성 이전에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최소한의 의무로서 안전한 제품을 제조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더군다나 KT&G는 화재안전담배를 제조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지 않은가. 해외에 수출하는 담배는 안전담배로, 국내에 판매하는 담배는 일반담배로 생산하는 KT&G의 행태에서 최근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국민들을 깔보는 것은 아닌가하는 묘한 수치감까지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좋은 기업은 화재안전담배법이 없어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를 위해 화재안전담배를 제조하는 기업이어야 한다는 것은 나만의 바람일까? 한국의 미래와 세계화를 뜻하는 ‘Korea Tomorrow & Global’. 국민에 대한 아니 담뱃불 화재로 피해를 입은 이웃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덕적인 책임감만 더해진다면 얼마나 멋진 슬로건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판단과 선택은 KT&G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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