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해 술 문화도 ‘절기주(節氣酒)’ 형태로 발달했다. 봄엔 진달래꽃으로 빚은 두견주(杜鵑酒), 한식엔 찹쌀로 만든 청명주(淸明酒), 단오날에는 동동주의 일종인 부의주(浮蟻酒)에 창포뿌리를 넣어 숙성시킨 창포주(菖蒲酒)를 즐겼다.
설날 새벽엔 귀를 밝게 한다는 이명주(耳明酒)를 마셨다. 설날 아침에 마시는 술은 데우지 않는다고 해서 ‘세주불온(歲酒不溫)’이라고 하였다. 설날 아침에 마시는 술 가운데 도소주(屠蘇酒)는 악귀를 물리치는 술, 귀신 잡는 약술이란 의미가 있다. ‘한 사람이 먹으면 한 집에 역질이 없고, 한 집이 먹으면 한 고을에 역질이 없다(一人飮之 一家無疫 一家飮之 一鄕無疫)’는 기록도 전한다.
도소주는 청주에 약재를 넣어 끓인다. ‘동국세시기’ ‘동의보감’ ‘고사활요’ 등에 기록된 한약재의 종류는 조금씩 다르지만 길경·천초·방풍·백출·진피·육계 등이 주재료다. 자양강장제이면서 피부병이나 혈관계 질병을 다스리는 약재들이다. 재료는 달라도 만드는 법은 같다. 한약재를 주머니에 넣어 섣달 그믐날 밤 우물에 담가 넣는다. 그리고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 꺼내 청주에 넣어 몇 번 끓어오르게 달인 후 차게 식힌다. 이렇게 준비한 도소주를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가족이 모여 앉아 한 잔씩 돌아가며 마신다. 도소주는 알코올 도수가 낮아 아이들이 조금 먹기엔 괜찮은 술이다. 엷은 황금빛을 띠며 술맛은 부드럽고 약간 달다. “산초와 백자 등으로 술을 빚으니 그 향기 그윽하네/ 도소주는 옛날부터 이 세상에 이름이 나 있었구나” 조선시대 학자 박순(1523~1589)이 지은 ‘음도소주(飮屠蘇酒)’란 시구다.
도소주를 마시는 데는 법도가 있다. 술을 마실 때는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향한다. 가족이 둘러앉아 어린 순서부터 받아 마신다. 젊은이들이 나이를 먹어 점차 어른이 되어감을 축하해주는 뜻이다. 어른들에게 술 마시는 예법을 배우는 자리이기도 하다.
도소주를 마시는 풍속을 일컫는 말인 도소음(屠蘇飮)은 신라시대 중국에서 들어와 고려시대에 성행했다. 조선시대엔 상류층 일부만 즐겼다고 한다. 일본강점기를 거치며 잊혀졌다 최근 다시 풍속을 잇는 가정이 많아졌다. 설날 아침 도소주를 마셔보는 것도 멋 있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