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자유민주주의 기본 수단이다. 선거 없는 민주주의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취약점도 있다. ‘가장 고약한 풍습은 벼슬하겠다고 선거운동하며 다투는 일이다’란 것은 키케로(BC 106~43)의 말이다. 로마의 정치가며 철학가며 웅변가다. 그는 ‘의무론’에서 그같이 말했다. ‘의무론’은 윤리학적 도덕의 근원을 의무에 두는 학설이다. 이런 키케로도 제3차 삼두정치 수립 후 안토니우스와의 대립 끝에 추방당해 살해됐다.
‘연례적 선거가 끝나면 노예제도가 다시 시작된다’고 한 것은 J·애덤스(1860~1935)의 말이다. 미국의 여성 여권운동가로 빈민구제운동에 힘썼다. 1931년 노벨평화상을 탔다. 저서 ‘정부론’에서 선거 땐 대중에게 굽실거리고, 끝나면 대중 위에 군림하는 선거직 사람들을 그같이 꼬집었다.
‘가장 적게 공약하는 자가 가장 적게 실망시킬 것이다’란 것은 B·바루크(1870~1965)의 익살이다. 미국의 정치가며 재정가다. 제2차대전후 미·소 분쟁을 가리켜 ‘냉전’(cold war)이란 말을 그가 처음으로 썼다. ‘정치인들은 강이 없는 곳에도 다리를 놔준다고 한다’는 것은 N·흐루시초프(1894~1971)의 비아냥이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일 적에 미국 뉴욕서 가진 기자회견 시 서구의 민주주의를 빗대어 그같이 조롱했다.
A·링컨(1821~1881)은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는 말로 선거를 예찬했고 지당한 말이지만, 앞서 예를 든 험담 또한 측면적 일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는 6·2 지방동시선거를 앞두고 벌써부터 각급 선거의 입후보자들이 마치 비온 뒤 죽순이 솟는 것처럼 떼거리로 여기 저기서 쏟아져 나온다. 날마다 자고 나면 ‘출마의 변’이 사태 난다. 앞으로 더할 것이다. 각급 선거구에서 인재를 자처하는 족속이 넘친다.
그러나 각급 선거의 선거구마다 얽히고설킨 그 많은 입후보 사연 속엔 배신의 함정이 숨어 있는 것을 본다. 신의를 저버리는 것이 배신이다. 신의는 또 믿음과 의리다. 의리는 사람으로서 행해야 할 도리다.
입후보 경합자들끼리 서로가 상대를 말해 배신했다고 한다. 어제의 적군이 오늘은 우군이 되고, 우군이 적군이 되기도 한다. 기껏 키워놨더니 이젠 대든다고 하는가 하면, 내 덕분에 네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도 한다. 약속을 어긴다고 하면, 반대로 약속을 정작 어긴 것은 어겼다는 상대라고 되레 공박한다. 각급 선거의 입후보군만도 아니다. 입후보자나 후보예정자들 따라 이리저리 쏠려다니는 선거족들끼리도 갈래갈래로 갈려 상대편을 배신자로 몰아댄다.
배신의 계절이다. 6·2 지방동시선거가 배신의 계절인 것은 특히 지역 연고가 강하게 작용되는 탓이다. 사람이 어찌 도덕군자처럼 흠집 없이 살 수 있을까마는 선거판에선 더 한다. 배신의 논쟁에서 자유로운 입후보자는 별로 있을 것 같지 않다. 다만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문제는 과연 그가 배신의 가치가 있는 사람이냐는 것이다. 지방선거는 지방비로 치른다. 즉 지방세를 내는 지역주민이 부담한다. 입후보자의 선거운동에서 법정비용 한도액은 지방비로 보전해준다. 바꿔 말하면 어중이 떠중이 같은 입후보자들로 지방세를 축내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입후보는 자유겠지만, 착각도 자유라는 속된 말이 있다. 배신의 가치가 없는 입후보 착각은 선거판만 혼탁시킨다.
‘가장 고약한 풍습은 벼슬하겠다고 선거운동하고 다투는 일’이라는 것, ‘연례적 선거가 끝나면 다시 노예제도가 시작된다’는 것, ‘가장 적게 공약하는 자가 가장 적게 실망시킬 것이다’라는 것, ‘강이 없는 곳에도 다리를 놔준다고 한다’는 것 등의 선거판 역기능이 거의 입후보의 순기능을 지니지 못한 족속들로 인해 비롯된다.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서민층이다. 서민들은 지금 먹고 살기에 바쁘다.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 입장에선, 선거판 사람들 이야기가 아직은 사치스럽다. 입후보족들은 배신의 계절에서 공연히 서민층의 화만 돋우기보단, 자신이 과연 입후보의 가치가 있는가를 먼저 돌아볼 줄 아는 자제가 있어야 한다.
/임양은 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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