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도 복합문화시설 갖춰야 한다

얼마 전 토요일 아침 일찍 서울 올림픽공원에 간 적이 있다. 이른 시간대임에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줄을 선 10대 청소년들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엔 학교에서 단체행사를 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근처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수많은 전세버스를 보고서야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 요즘 한류스타로 국내외에서 한창 인기를 누리고 있는 5인조 아이돌 그룹의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몰려온 열성 팬들이었다.

 

지난주 내한공연을 가진 휘트니 휴스턴을 비롯해 셀린 디온, 앤니오 모리꼬네, 플라시도 도밍고, 보첼리 등 매머드급 외국공연 대부분이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다. 플라스틱으로 된 객석의자에 열악한 방음시설에도 대형 공연물이 유독 서울 올림픽공원에만 몰리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지방에는 1만여명의 관람객을 수용할 만한 대형 공연장이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규모가 가장 큰 서울 세종문화회관이 3천22석이고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도 2천530석이다. 기획사 입장에서는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대형 공연, 특히 외국의 대형 콘서트는 엄두도 못 낸다. 비싼 비용을 들여 고작 서울에서 하루 이틀 정도 공연할 수밖에 없다. 지방은 마땅한 공연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같은 공연인데도 지방까지 보통 20~30여회 공연한다. 그렇다 보니 단가면에서 볼 때 우리가 일본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

 

관람객이 지불하는 공연 관람료는 공연자의 출연료와 항공·숙박비, 인쇄·선전비, 공연장사용료, 음향, 조명, 무대설치비와 각종 세금 등이 포함된 모든 비용을 좌석수로 나눈 금액이 평균 입장료가 된다. 공연횟수가 늘면 출연료와 항공료 시설비가 절감돼 입장료 가격도 내려간다. 공연을 기획하는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면서까지 지방공연을 할 수는 없다. 때문에 지방에 있는 팬들은 서울까지의 교통비와 숙식비 등 추가비용부담으로 서울팬들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지불하거나 아예 포기해 버린다.

 

그렇다고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큰 규모의 공연장을 전국에 당장 건설하기는 어려우며 또한 효율적이지도 못하다. 현재 있는 시설을 잘 활용하면 큰돈 안 들이고도 가능하다. 전국 웬만한 도시에는 1만여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실내체육관이 여러 곳 있다. 이 시설에 음향, 조명, 무대장치, 방음시설 등을 보강하면 공연장으로 훌륭히 활용할 수 있다.

 

따라서 운동경기도 하고 대규모 공연도 하는 복합 문화시설로 리모델링을 하면 지방 청소년들도 서울의 팬들과 마찬가지로 충분한 문화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행안부 통계에 의하면 각 지방에서 개최되고 있는 크고 작은 각종 축제가 2009년 현재 전국적으로 매년 6천여개에 달한다. 별로 실효성도 없는 부실한 1회성 전시행정에 불과한 축제를 정리하고, 그 예산으로 체육관 시설 보강에 사용해 복합문화시설로 재탄생시킨다면 장기적으로 지역문화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만 되면 공연기획사는 전국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공연을 할 수 있게 돼 지금보다 저렴한 가격의 관람료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기획할 수 있게 된다. 자연스럽게 지방의 팬들은 돈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시의 브랜드 가치도 높아질 것이다.

 

마침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안산의 경우 전천후 복합문화시설인 ‘안산★스타돔’이 건설된다고 한다. 오는 2014년 완공되면 이곳에는 야구경기뿐만 아니라 대형 쇼핑센터와 영화관, 대규모 공연도 할 수 있는 시설들을 갖추게 된다. 앞으로 4년 후 인기절정 스타들의 국내 공연은 물론 세계적인 공연물을 쾌적한 시설에서 감상할 수 있을 것을 생각해 보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며 기대가 앞선다.

 

/한진석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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