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기 어려운 세상이라지만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점 등엔 쇼핑을 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연말연시, 명절전후나 무슨 ‘날(day)’이면 더욱 붐빈다. 경영주에겐 좋은 현상이지만 유통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죽을 노릇이다. 백화점 등이 하루도 쉬지 않고 문을 열고, 고객이 늘어날수록 ‘감정노동’ 스트레스가 커지기 때문이다.
판매직·콜센터 등 서비스산업 종사자들이 자신의 표현을 고객에게 맞추면서 일하는 것이 감정노동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말고는 아무 내색 않고 일을 해야 한다. 서비스 경쟁이 날이 갈수록 치열해져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감정노동자들이 많다. 서비스산업 종사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백화점 노동자 가운데 56.2%가 우울증 등 스트레스질환을 가지고 있다.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이른바 ‘진상’ 고객만이 아니라 열악한 근무여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제대로 쉴 수 없는 탓이다.
최근 백화점 업계가 대형 점포 시설과 함께 영업시간 연장에 나서면서 노동자들의 근무여건은 더 크게 후퇴했다. 1990년대까지 있었던 ‘주 1회 휴점’은 없어졌고, ‘월 1회 휴점’도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추석, 설 명절 연후에 이틀씩 쉬었던 것도 하루에 그쳤다. 백화점 판매 노동자들은 일주일 평균 6일을 일한다. 회사에 감정노동 해소 프로그램 같은 게 없는 상태라 직원들이 같이 쉬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게 유일한 방법인데, 영업시간이 연장돼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게다가 백화점에서 일하는 직원들 대부분이 백화점에 직접 고용되지 않은 협력업체 직원이어서 이들의 복지는 뒷전으로 밀린다. 직원 휴게실 자리에 고객 편의시설이 들어서고, 갑자기 30분씩 연장영업을 해도 협력업체 직원들은 문제를 제기하기 힘들다.
서비스산업이 발전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감정노동의 문제는 심각해졌다. 매장의 직원이 손님한테 뺨을 맞고 폭언을 듣는 경우도 발생한다. 모멸감이 들지 않는다면 감정이 없는 로봇이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너무 힘들다”는 게 백화점 등 대형 서비스산업 종사원들의 하소연이다. “힘들면, 하기 싫으면 그만두라”는 협박도 받는다. 고객이나 관리자가 서비스 노동자를 인격체로 대우해 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서비스 산업계도 빈부의 벽이 높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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