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팔사략(十八史略)’은 증선지가 중국 고대시대부터 송대까지 중국 4천년의 역사를 알기 쉽게 정리한 중국 역사 입문서다. 책 속에는 황제에서부터 시정잡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간들의 지혜와 삶이 담겨져 있다. 십팔사략에는 장군 풍이(馮異)의 이야기가 나온다. 풍이는 중국 후한 광무제 때의 장군으로 별명이 대수장군(大樹將軍)이다. 그는 군사전문가로서 뛰어났을 뿐 아니라 강력한 충성심을 바탕으로 평소의 마음가짐도 매우 엄격하고 겸손했다. 아마도 그의 가장 큰 덕목은 겸양의 경지까지 내려간 겸손한 마음가짐이라고 본다. 크고 작은 전투 후에는 으레 전공에 대한 논공행상이 벌어진다. 그가 대수장군(大樹將軍)이라는 별칭(別稱)을 얻게 된 것은 매사에 겸손해 모두가 치열하게 공을 논하는 자리에서 벗어나 빙긋이 웃으며 큰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물러나 있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대수장군이라는 말은 후세에 매사에 겸손하고 말 없이 수고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 됐다.
겸손은 경건하고 사려깊은 삶을 사는 사람에게 중요한 미덕으로 나타난다. 겸손은 자기자신에 대한 진정성과 자부심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구현되지 않는다. 교만의 모습으로, 열등의식이나 비굴함으로 나타난다. 겸손은 참으로 자신있는 사람만이 갖출 수 있는 인격이다. 딕 디보스는 겸양이 지니는 몇 가지 장점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겸손은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심의 기초인데, 동정심이나 용기처럼 개인의 고결함과 자유의 보존에 반드시 필요하다. 겸손은 관대함과 친절한 수긍, 관용, 융통성 있는 견해를 갖게 하여 타인의 가능성 등 좋은 특성들을 기꺼이 보고자 하는 태도를 갖게 해준다. 겸손하게 우리 자신을 낮추는 것은 옳은 일의 일부이며 다른 사람의 관심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 도움이 되며, 우리 자신에 대해 정직하게 해주고 우리를 진실하게 해준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정직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공정해지려면 겸손은 필수적이다.”
이처럼 겸손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 삶의 좋은 것들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고, 사람이 저지르는 실수를 용서하는 데 필요한 확신을 준다. 어떻게 보면 겸손은 아첨을 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지원하고,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한 일을 바로잡게 하고, 생색을 내지 않으면서도 남을 격려하는 좋은 무기다. 실제적인 면을 보더라도 겸손함은 처세와 인간관계에 있어 부드럽고 세련된 강력한 수단이다. 그래서 정치적이고 목표지향적인 사람들은 겸손의 중요성을 알고 겸손하기를 원한다. 아니, 겸손의 모양이라도 갖추기를 원한다. 모든 사람들은 겸손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마음 같지는 않다. 겸손하게 행동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면 힘 없는 자의 처세술 내지는 비굴함으로 보고 무시하고 깔보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힘을 갖춘 진정한 겸손함이 필요하다. 여기서 힘은 개인별로, 사회적 상황과 시대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머지않아 6월 지방선거가 있다. 지역사회를 둘러보면 많은 정치지망생들이 선출직으로 선택되어 정치하기를 희망하는데, 정말 국가와 국민을 위해 겸손히 일하겠다는 진정성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현장에 많이 나타나기를 바란다. 사리사욕에 바탕을 둔 비열함과 중상모략, 권모술수가 수단으로 횡행하는 대신, 민의우선이라는 최고의 가치를 가슴에 담은 겸손한 사람들이 비중 있는 사람으로 선택되고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선거과정에 최선을 다한 다음 선거 후 논공행상의 현장에서 민초들의 바람을 최우선으로 하였다는 겸손한 모습으로 큰 나무 뒤에서 빙그레 웃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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