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없고 ‘너와 함께 있는 나’만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의학용어가 ‘관계 중독증’이다. 끊임없이 친밀한 관계를 맺고 유지할 누군가를 찾는다는 점에서 ‘중독’이다. 내 삶의 의미를 ‘너’에서만 찾는 사람들이다. 대인 관계에서 특정인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우다.
사귈 때는 하루라도 안 보면 미칠 것 같고, 결혼 후엔 배우자가 자신의 생일이나 기념일 같은 것을 잊을 경우 서운하다 못해 마음의 상처를 받는 식이다.
관계에 중독된 사람들은 친밀한 누군가가 곁에 없으면 불안하고 그에게만 촉각을 곤두세워 사소한 말이나 행동에도 쉽게 상처를 입는다. 남편, 자녀 등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생활의 전부를 이루고, 그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며, 그들을 돌보는 것으로 ‘나’란 존재의 의식체계를 채워버렸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때로는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어린애같이, 때로는 제 정신이 아닌 것처럼 격한 감정을 드러내 다른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극히 소수이지만 애인이 변심했을 때 자살하는 경우도 생긴다. 부부 중 한 사람이 먼저 떠나면 따라 죽는 경우를 ‘순애(純愛)’ 라고 하지만 이도 사실은 관계 중독증이다. 관계 중독자들은 일반적으로 ‘자아 개념’이 서 있지 않아 ‘나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이 특징이다. 다른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선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고, 그들을 뒷바라지하는 데도 비상한 통찰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진단하고 해결하는 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관계 중독이 대개 한 개인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잘못된 자아 상실 문제를 스스로 인정하고 변화하지 않으면 그것들이 계속 문제를 일으키고, 그로 인해 생기는 고통에서 헤어날 수 없게 된다.
관계 중독에서 벗어나는 치료의 첫걸음은 ‘한 걸음 떨어져’ 자신을 냉철하게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두번째는 자존감을 회복하는 일이다. 즉 ‘나는 소중하고 아름답고 유일한 영적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대인관계에서 ‘나’를 바로 세워야 한다. 세번째, 타인과의 경계선을 확실히 긋는 일도 중요하다. ‘홀로 서기’는 그래서 중요하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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