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말을 좋아하지만, 말 이외에 좋아하는 동물은 단연 늑대이다. 집에서 기르는 큰 개와 비슷한 모습의 늑대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늑대의 생활습성과 행동방식이 나의 마음을 끌기 때문이다. ‘늑대대장’을 중심으로 협력하여 일사불란하게 목표를 쟁취하는 조직력과, 몸이 부서지고 뼈가 가루가 되어도 끝까지 목표물을 추적하는 강인한 지구력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먹이를 포획한 후에 최소한의 깔끔한 처리로 상대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런 나에게 장룽의 장편소설 ‘늑대 토템’은 일단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늑대 토템’은 작가가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에 내몽골에서 늑대와 함께 지내면서 알게 된 늑대의 생태와 정신을 기반으로 쓴 자전적 소설로 원제는 ‘낭도등(浪圖騰)’이다.
저자는 앞으로 중국이 발전하려면 전통적인 농경민족의 집단주의적, 순응형의 특성을 벗어나 늑대와 공존하고, 그래서 늑대로 표상되는 유목민의 진취적이고 기민한 기동성을 바탕으로 불굴의 정신력과 생명력을 가져서 모든 중화민족은 늑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왜 하필 늑대인가?’라는 물음에 장룽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늑대세계의 강점은 질서정연한 조직력에 있다. 20~40마리씩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늑대 무리는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대장 늑대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먹잇감을 포위하고, 순식간에 덤벼들어 덩치 크고 힘 좋은 먹잇감을 해치운다. 늑대를 강하게 하는 힘은 상상을 초월하는 끈질긴 인내심에 있다. 늑대가 가젤을 사냥할 때는 무리 전체가 숨을 죽이고 배고픔과 추위를 참아내며 몇 시간 또는 며칠 동안도 눈 속에 파묻혀 몸을 숨기고 최적의 기회를 포착해 사냥에 성공한다. 늑대의 ‘야성’이란 이러한 지혜, 놀라운 집중력과 조직력, 인내심과 도전성에 기초한 것이다.
결국 우리가 현대를 살아가면서 늑대 숭배사상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덕목은 ‘야성(野性)의 회복’이라고 본다. 넘쳐나는 물질적 풍요와 감각적인 유혹들 앞에 우리는 넓은 초원을 달리는 힘찬 질주본능과 생존본능의 팽팽한 긴장감을 잊고 지낸다. 언젠가부터 우리들은 사나이다운 야성을 잃어가고 있다. 어떤 역경이나 시련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끈질김을 찾아보기 힘들다. 체력과 정신력이 허약해 매사에 소극적인 유약한 청소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쉽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공직자들도 많다. 조급하게 일을 벌이고 힘든 과정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편한 일만 추구하며 힘든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려는 직장인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이처럼 나약하고 안주하려는 사람들에게 늑대의 야성은 준엄하게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댄다. 그리고 상대에 대한 냉철한 분석, 지형지물에 대한 완벽한 이해, 때를 기다리는 인내심을 도모하라고 말한다. 리더의 일사불란한 지휘, 엄격한 조직의 규율, 승리에 이르는 속전속결, 가족에 대한 책임감, 미래에 대한 진취적인 대비를 바탕으로 야심과 웅지를 가지라고 으르렁거린다.
지식 정보화, 세계화가 화두인 21세기는 분명 유목민의 시대다. 군둘라 엥리슈가 말한 Job Nomad(직업 유목민)는 과거 칭기즈칸이 그러했듯이 유목민의 기질인 결핍을 극복하는 능력, 본질에 집중하는 힘, 동적인 것과 정적인 것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을 알고 자신의 노동력을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런 점에서 늑대들의 습성과는 약간은 다르다. 그러나 그들의 길들여지지 않은 무한질주적인 창발성과 변화와 본질 앞에서 조물거리지 않은 당당함은 서로 비슷하다. 긴 소설이지만 일독을 권한다.
/김 우 자혜학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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