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우편 적혀 있는 전선편지를/전해주는 배달부가 싸립문도 못가서/복받치는 기쁨에 나는 울었소…’ 6·25 전쟁 때 유행됐던 가요 ‘전선에서 온 편지’ 가사의 한 대목이다.
신랑을 전선에 보낸 새댁의 애절한 사연이다. 죽은지 산지 잘 몰랐던 남편의 편지를 받는 것은, 아직은 살아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반가운 울음이 복받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했던 6·25 새댁들도 이젠 어언 80대가 됐다.
집배원을 전에는 배달부라고 했다. 배달부가 “편지요!”하며 전해주는 목소리는 생활의 전령이었다. 기쁜 편지를 전해줄 땐 배달부가 웬지 고맙게 여겨졌고, 슬픈 편지를 전해줄 땐 배달부가 공연히 원망스럽기도 했다.
우편물의 대부분이었던 편지가 줄어든 것은 정보통신이 발달된 1990년대 들어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이다. 지금은 편지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현대사회의 우편물은 각종 고지물 투성이다.
안부를 묻거나 소식을 전하는 데 몇날 며칠 걸리는 편지보다는 통신수단이 더 빠르다 보니 편지를 쓸 일이 없어졌다. 전화는 물론이고 컴퓨터 E메일로 즉석 대화를 갖는 편한 세상이다. 전화 또한 손전화가 보편화 하어 집전화는 거의 무용지물이다시피 됐다.
그런데 직접 육성으로 소식을 주고 받는 것도 좋지만, 육필로 쓴 편지는 또 다른 정감이 스며있다. 편지를 보관하는 맛도 있다. 바쁘잖은 문안 소식 같은 건 편지로 할법도 한데 누구라 할 것 없이 요즘 사람들은 편지를 안 쓴다.
집배원들의 소임이 또 하나 생겼다. 경기지방경찰청과 서울체신청의 협약으로 집배원들이 ‘어린이 안전지킴이’ 역할을 하게 됐다. 동네 구석구석 그리고 집집마다 다니는 직업 특성상 어린이를 범죄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장점을 살린 것은 잘한 일이다. 한마디만 더 하자면 이를 뒷받침할 대책 또한 병행돼야 한다.
생각하면 집배원의 일도 세태를 반영하는 것 같다. 편지 배달이 주된 소임이던 것이 각종 고지물로 바뀌더니, 이젠 ‘어린이 안전 지킴이’ 역할을 하게 됐다. 집배원들의 수고가 많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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