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의 사료화는 2002년에도 시도됐었다. 당시 정부는 수입 사료 대체, 재고 부담 완화 등의 이유를 들어 30만~40만t가량의 쌀을 가축사료로 처분키로 내부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주식인 쌀을 소·돼지에게 주느냐’는 정서적 반감에 부딪혀 더 이상의 논의를 이어가지 못했다. 그렇지만 지금의 분위기는 2002년과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쌀 수급안정 대책의 일환으로 수확한 지 3년이 넘은 묵은쌀을 가축 사료로 처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배경이다.
현재 쌀 재고량은 연이은 풍작으로 적정치를 2배가량 웃도는 상황이다. 수확기 전까지 적정 재고 72만t을 유지하려면 50만~60만t을 주정용이나 가공용 등으로 처분해야 한다. 그렇지만 가공용은 수요가 미미한 데다 주정용은 헐값에 처분해야 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더구나 재고 쌀 처분의 대안으로 여겨졌던 대북 쌀 지원도 천안함 사태로 사실상 물 건너가면서 정부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하지만 농수산식품부는 농협중앙회의 건의서가 접수되면 예산 부처와 협의를 거쳐 재고 쌀 처리 방식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농협은 지난 2005년 수확기 쌀 시장 안정을 위해 사들인 10만t 가운데 지금까지 처분하지 못한 쌀 6만6천t을 사료용으로 처분할 수 있도록 정부에 건의하겠다고 밝혔었다.
정부도 일본처럼 ‘수확한 지 2년 이상 된 쌀은 가공용, 3년 이상 된 쌀은 사료용’ 등으로 용도를 정하고 장기 수급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자세한 재고량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그동안 방출량 등을 제외하면 현재 재고량이 130만t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10만t의 쌀을 보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연간 320억원가량이면 정부의 부담도 보통이 아니다. 재고를 계속해서 끌어안고 가는 것보다는 가축사료로 처분하는 게 정부로선 유리한 셈이다.
그러나 이상한 노릇은 쌀이 남아돌 때마다 북한 주민에게 공짜로 퍼줄 생각을 하면서 헐벗고 굶주리는 우리 국민은 배려하지 않는 점이다. 남한에도 쌀 없어 허덕이는 복지시설 같은 곳이 얼마나 많은 지 실상을 모르는 모양이다. 남아도는 쌀을 북한보다 우리 서민에게 먼저 나눠 주어야 한다. 쌀 사료화는 시기상조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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