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터(lighter)가 사치품이던 시절이 있었다. 여송연이나 파이프담배를 멋으로 피우던 때다. 잎담배로 권연을 굵게 만 여송연은 필리핀의 루손섬에서 나는 게 향이 짙으면서 독해 으뜸으로 꼽았다. 파이프는 잎담배를 잘게 썰거나 빻은 것을 담아 피웠다. 여송연의 애연가로는 영국의 처칠, 파이프담배는 미국의 맥아더가 유명했다.
라이터 가운데 고급품으로 쳤던 게 지포다. 뭣보다 발화가 잘 되고 튼튼해 고장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지포라이터는 실은 미군용이다. 사단급 이상의 미 군수부에서 관장했다. 그런데 이런 군수부를 일명 G-4라고 불러 라이터 또한 지포라이터가 됐다.
여송연이나 파이프담배가 아닌 보통 권연을 피우면서도 좋은 라이터를 찾던 것이 점차 바뀌어 라이터에 신경을 안 쓰게 된 지 오래다. 끽연권보단 혐연권이 우선시되는 사회 변화의 영향이 없지 않을 것이다.
직방형의 플라스틱 라이터가 보편화됐다. 옛 라이터는 수시로 휘발유를 넣어 썼으나, 플라스틱 라이터는 한정된 액화부탄가스가 담겨 있다.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집안마다 성냥 대신에 라이터 한 개쯤은 비치할 만큼 플라스틱 라이터는 널리 쓰이는 ‘국민라이터’가 됐다. 가게에서 파는 값이 개당 300원을 받기도 하고 400원을 받기도 한다.
문제는 품질이다. 라이터에 담겨진 액화 부탄가스를 절반도 못 쓰고 발화대목이 고장 나 버릴 때가 많다는 것이 소비자들의 불만이다. 가스가 떨어질 때까지 제대로 다 쓰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라이터엔 분명히 ‘품질보증’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는데도 그러는 모양이다. “많이 팔아먹기 위해 일부러 중간에 고장나도록 하는 것 같다”는 소비자들의 의문이 있지만 그럴리는 만무할 것이다.
만약 제품에 쏟는 장인정신의 빈곤이 원인이라면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300~400원짜리라고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 ‘국민라이터’다운 자긍심을 갖고 책임 있는 출하를 해야 된다. 애연가들을 짜증나게 하는 라이터가 아닌, 사랑받는 라이터가 되면 이 또한 지포라이터보다 못하지 않을 것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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