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물박사'의 정수기, 알고보니 '황당'

성수(聖水)의 정보 담겼다는 물, 감정결과 '부적합'판정…의대 교수 사기 혐의로 입건

지난 2008년 6월 지모(45)씨는 뇌종양을 앓고 있는 부인을 위해 모 의대 김모(53) 교수가 판매하는 ‘전사(轉寫) 장치’라는 전기 장비를 구입했다.

 

이 장비를 통해 얻은 물을 마시면 뇌종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해서 구입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고, 구입비용 217만원만 고스란히 날렸다.

 

양모(38)씨도 지난 2008년 6월부터 지난 1월까지 김 교수측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140만원 상당의 비슷한 장치 140만원어치를 구입했다.

 

천식을 가진 아버지와 아토피 피부 질환을 앓는 아들이 마실 물을 만들기 위해서였지만 역시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국내 '물 박사'로 유명세를 탄 대학 교수가 사기 혐의 등으로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자신이 개발한 장비를 통해 얻은 물이 질병 치료에 효능이 있다며 수천명에게 장비를 판매한 혐의로 모 대학 교수 김씨와 제조업자 등 9명을 불구속입건했다고 30일 밝혔다.

 

이들은 지난 2006년부터 지난 4월까지 김 교수와 부인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5100여명에게 관련 제품을 판매해 17억원 상당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이 설명한 전사 장치의 작동 원리를 듣고 있으면 황당한 느낌이 든다.

 

전사 장치에는 2개의 구멍이 나 있는데, 한쪽 투입구에는 수입해 왔다는 성수(聖水)를 넣고 반대쪽 구멍에는 성수에 담긴 ‘정보(성분)’를 기록할 자기(磁氣) 테이프를 놓는다.

 

전사 장치를 작동시키면 순간 7.8Hz의 전파가 발생해 성수의 정보가 테이프에 전달된다고 한다.

 

이 테이프에 담긴 정보들은 최종적으로 정수기에 해당하는 세라믹 볼에 옮긴다.

 

이렇게 제조된 세라믹 볼을 1.5리터짜리 생수통에 넣고 마시면 자연치유력을 증강시켜 질병을 고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세라믹 볼이 담긴 50g짜리 작은 병의 원가는 1500원이었지만, 이 같은 과정을 거쳐 4만원에 판매됐다.

 

그러나 경찰이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 감정 의뢰한 결과 이 물은 수소이온농도와 탁도가 기준치를 초과해 먹는 물로는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또 보건복지부는 '미네랄 제품이 의약품이 아니라면 식품에 해당되기 때문에 영업신고를 해야 하는데 신고를 하지 않았다'며 식품위생법 위반이라는 소견을 내놓았다.

 

특정 치료물질의 정보가 첨가되면 가격은 더 올라갔다. 당뇨병 치료제인 인슐린 등 특정 질병을 치료하는 물질을 추가로 전사한 세라믹 볼은 1병당 최고 9만원에 거래됐다.

 

이에 대해 서울대의 한 교수는 "'전사 장치'를 이용해 특정 약품의 정보를 전사하거나 복사 또는 증폭시킨다는 것은 현재 과학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혹평했다.

 

김 교수는 또 30여가지의 문양을 그린 스티커와 카드를 판매했다. 비디오테이프 원료 용액을 이용해 문양을 그린 뒤 이를 스캔해 USB에 저장한 다음, 전사 장치를 통해 기(氣)를 증폭시켜 만든 것이다.

 

용도는 자동차 급발진 예방 등이었다.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분석 의뢰한 결과 해당 제품들은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들어졌을 뿐 성분 변화는 없다는 회신이 돌아왔다.

 

원가 43원짜리 스티커는 2000원에, 385원짜리 카드는 1만원에 판매하면서 김 교수측이 폭리를 취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내 과학이 현대과학의 이론으로 입증이 안 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면서도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이 물을 먹고 피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이어 "경찰이 이 물을 마신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 물은 사기다. 김 교수를 고발하는 일에 동참하자'고 말했다"며 "나를 후원하는 600여명의 사람들은 마실 권리를 박탈당했다며 헌법소원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현재 해당 제품들의 판매를 금지하는 한편 해당 인터넷 거래 사이트를 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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