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가 된, 손학규

임양은 본사주필 ye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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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가 요즘 진보주의를 자칭한다. 좀 어리뻥뻥하다. 지난 수원 장안구 국회의원 재선거 때다. 민주당 선대위를 맡았을 적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경기지역 사람들 눈엔 좀 어색해 보였지만 이해하려고 했다.

 

6·2 지방선거에선 달랐다. 그가 유시민과 어우러진 그림은 아무리 생각해도 생뚱맞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지난 15일 춘천에서 그동안 기르던 닭으로 손님들에게 백숙 대접을 하며 칩거 생활를 끝낸 자리에서는 이광재와 러브샷을 했다더니, 여의도로 돌아가자마자 이내 진보주의자가 됐다.

 

아니, 전부터 좌파였던 걸로 행세한다.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선 한나라당을 나온 것도, 진보적 개혁이 먹혀들지 않았기 때문인 것처럼 말했다. “진보적 자유주의의 새로운 길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좌파였을까, ‘경기비전 2006’은 2003년 1월 경기도지사 시절에 발표한 ‘도정 10대 분야 51개 사업’의 로드맵이다. A4 용지로 무려 245쪽 분량이다. 말하고 싶은 건 이 방대한 책자의 내면 철학에 좌파 흔적은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단 사실이다.

 

좌파연대, 진보주의 열공

중도 개혁의 실용주의 선호를 몰랐던 것은 아니나, 진보주의는 아니었다. 구로공단에 위장 취업한 민중운동 전력은 있었어도, 좌파는 되지 못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보사부 장관에 기용된 것이 탈이념화 후다. 우린 그렇게 믿었었다.

 

신자유주의 경제의 폐해가 예컨대 양극화라 해도, 사회주의로 갈 순 없고 또 사회주의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10년 전과 달라 ‘제3의 길’이 진보적 자유주의의 대안이 아니다”란 것이 그가 표변한 좌파 논리다. 그러나 엎치나 메치나 마찬가지다. ‘진보적 자유주의’에 ‘새로운 길’ 수식어를 붙인다고 현실적으로 달라질 것은 없다.

 

노무현을 교주로 하는 덴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이나 같다. 그러나 국민참여당은 좌파 정당이 분명하나, 민주당을 완전한 좌파 정당으로 보는 덴 아직 무리가 있다. 그런데 국민참여당계 노무현 인맥이 민주당내 일각을 형성한다. 이광재, 안희정, 김두관 등이다.

 

‘경포대’란 2005년 손학규가 노무현을 가리켜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이라고 비꼬아서 했던 말이다. 노무현은 또 2007년 대선 정국에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를 말하며 “보따리 장수”라고 했다.

 

장차,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합당은 필연적이다. 국민참여당의 선거직 독자 진출은 난망하다. 지난 6·2 지방선거, 7·28 재보선에서 거듭된 실패로 확인됐다. 이런 가운데 지금 여론조사로 당권 주자의 선두에 선 손학규는 한참 신바람 났다. 하지만 그가 목표하는 상종가는 민주당+국민참여당=대통령 후보일 것이다.

 

또 한 번의 시도 ‘정치 도박’

한나라당에서 장관·국회의원·도지사를 지냈다. 모두 현직이다. 탈당은 이래서 단물만 쏙 빼먹은 배신이란 말이 가능하다. 그러나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철저하게 불우했다. 민생 현장 ‘100일 대장정’은 어느 정치인도 흉내내지 못한 대탐험이다. 완전히 민생 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당내에선 백안시했고, 여론조사는 계속 한 자릿수를 넘지 못했다. 그대로 있다가는 절로 고사될 위기감에서 결행된 것이 배신의 비난을 무릅쓴 탈당카드였을 것이다.

 

어떻든 민주당으로 개가해서는 과도체제 대표에 이어 상임고문의 빅3로 분류되면서, 당권 주자로 주목받는 입장이 됐다. 여러 갈래의 당내 잡탕 계파 가운데서 어떻게 두각을 나타낼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는 민주당에 가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은 ‘불쏘시개가 아니고, 빼다 박는 벽돌도 아니다’라고 했다. 그래놓고는 갔다. 잘못하면 타버린 불쏘시개나 버려진 벽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한나라당에서 못 이룬 대권의 꿈을 민주당에서 이룬다면 역량이다.

 

그의 진보주의 좌파 열공이 좌파 연대의 정략이든, 본인의 신조든 간에 한 가지는 믿는다. 별난 좌파의 종북주의와는 구별될 것으로 안다. 손학규의 돌연한 변신이 황당하면서도, 한편 기왕지사 관심을 갖는 것은 어지러운 국내 좌파 세력을 정비하는 진보주의의 새 모럴을 보여 줄 수 있을까 해서다. 다시 닭을 키울 생각이 없으면 ‘정치 도박’에 처신을 잘 해야 된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임양은 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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