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한국계 미국인 제임스 리가 워싱턴 인근의 디스커버리 채널 방송국 본사에서 인질극을 벌이다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즉각적으로 2007년 4월 역시 한국계 조승희 학생에 의해 저질러졌던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언론에서 크게 보도했고 한국 사회 전체를 충격에 빠뜨리면서 수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조승희 사건에 비해 단순히 사실보도만 이뤄졌고 크게 이슈화되지 않았다.
왜일까? 우선 32명이 목숨을 잃고 29명이 부상을 입은 커다란 참화였던 버지니아 공대 사건에 비해 이번 사건에서는 당사자가 저격되어 죽었을 뿐 인질들은 무사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비록 조승희가 미국 영주권자이긴 해도 국적은 대한민국이었던 반면 제임스 리는 국적이 미국이었던 차이도 작용했으리라.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번 사건이 여전히 한국 언론의 보도 대상이 됐다는 점이다. 유럽계 이민에 비해 역사도 짧고 인구도 적어서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한국계’라는 점이 중요한 사유의 대상인 것이다. 우리나라가 21세기 들어 다문화 사회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지만, 우리는 아직도 핏줄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이다.
버지니아 공대 사건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우리가 사과를 해야 한다는 여론과 미국인들은 한국민이 원인 제공 민족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그럴 필요가 없다는 반론이 첨예하게 부딪쳤던 사실이 잊혀지지 않는다. 아무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애도와 유감을 표명했다. 이에 대한 반론이 많았지만, 그 반론들이 내겐 두 개의 서로 다른 잣대를 가지고 편리한 대로 들이대는 이중적 태도를 투영하는 것 같아 매우 불편했다. 왜냐하면 그 사건이 있기 얼마 전인 2006년 미식축구 수퍼볼의 스타였던 한국계 미국인 하인즈 워드를 마치 우리나라 사람인 양 영웅시하였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는 온전히 한국인의 후손도 아니고 한국인 어머니의 피를 받은 혼혈인이었으며 국적도 미국인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국적도 한국인이고 이민 1.5세였던 조승희의 경우와 비교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스포츠 스타에게는 한민족의 자격을 부여하며 자랑을 했고, 나쁜 일은 한 살인자는 우리 민족의 후손이 아니라는 듯이 외면하려는 논리였던 것이다. 어떤 입장을 취하든, 적어도 일관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5천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다. 쌀이 한 반도의 주식으로 정해지면서 우리 사회는 정착사회를 이루었다. 쌀농사는 지역 공동체의 협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의 정에 기초한 사회가 되었고, 혈연, 지연, 학연이 중요한 동력이 되는 사회가 되었다. 반면에 유럽과 미국은 많은 민족들이 이합집산을 하면서 하나의 공간에서 공존하는 이민사회를 이루었다. 서로 다른 민족들이 서로 다른 언어와 종교, 문화를 가지고 살아가자니 자연히 합리성과 법에 기초한 사회를 만들었다.
이제 우리도 외국인이 120만명을 돌파하여 바야흐로 다민족, 다문화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우리도 단일민족이라는 관념에 더 이상 매몰되지 말고 세계시민으로서 열린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바람직한 형태의 다문화 사회를 만들고 가꾸어 나가기 위해서는 지나친 혈연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우리의 공간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두 우리의 동포라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대우 등의 소식들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마음이 착잡하다.
이제 제임스 리 사건이나 조승희 사건, 그리고 하인즈 워드 현상 등에 일희일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 만 규 아주대 불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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