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우당’ 손자 이종걸 국회의원
올해는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해다. 이를 기념해 KBS 특별드라마 ‘자유인 이회영’이 방송되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온 국민의 존경과 신망을 받는 우당의 활동이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잊혀지고 있는 독립운동사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이와 함께 우리 현대사는 독립을 위해 재산과 목숨을 바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제대로 조명하지 못하고 기리지도 못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드라마 방영을 계기로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걸 의원을 만났다.
민족정기 바로세우기 나서겠다
- 드라마는 보고 있나. 감회가 새로울 것 같은데.
세상을 살아오면서 조부님의 무게를 느끼면서 살았다. 항상 존경심과 혹시 그 이름에 누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렇게 항상 조부님을 가슴속에 담고 살아왔음에도 이번 드라마를 보면서 새삼 조부님의 삶에 놀라게 됐다.
드라마를 통해 제3자적 시각으로 보면서 조부 이회영이 아닌 거대한 인간 이회영에 또다른 감동과 존경심 같은 그런 것을 느낀다. 다시 한번 제가 잘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고 자세를 가다듬게 해주는 것 같다.
- 이같은 조부에 대한 존경심은 성인이 되기전 어릴적에도 영향을 받았을 덴데.
우리가 어릴때 많이 부른 노래 중에서 ‘푸른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로 시작하는 ‘반달’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는 윤극영 선생님께서 제 아버님께 헌정한 헌정곡이다. 조부님의 얼굴을 한 번도 뵙지 못한 제 부친께 어려운 상황이지만 꿋꿋하고 당당히 살아가라는 격려를 주시기 위해 만들어 주신 곡이다. 실제 제가 어릴 때 많은 분들이 저희 집에 방문해 주시곤 하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저희 조부님과의 관계 때문에 방문해주신 분들이었다.
-오신 분 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분이 있나.
우관 이정규 선생님이다. 안양에 빈민촌에 살 때 우당을 따랐던 우관 선생은 해방후 성균관대학 총장을 하셨다. 때때로 승용차를 타고 할머니를 찾아 오셨고 올 때마다 고깃국을 먹었다. 많은 분들이 오셨는데 먹을 것을 주셔서 그런지 기억에 남는다.
경술국치 100년 맞아도 친일파 후손 떵떵 거려
민족정기 세울 법규 마련 박노해·강기훈 유서대필
변호사로 가장 기억남아 아픈 역사 잊지 말아야
우관 선생은 이후 돌아가실 때 생전에 재산이라고는 잠실의 17평짜리 아파트 뿐이었는데 아나키스트 연구단체에 기증하셨다. 우리에게는 조부님이 그린 난을 주셨다. 이 난이 몇 안 되는 조부님의 유품이다.
- 경술국치 100년.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곳곳에 있다. 아쉬움이 있다면.
국민 대다수의 공감대가 형성돼있는 부분이겠지만, 아무래도 친일인사들에 대한 정리가 제대로 안되고 있지 않나. 친일파의 자손들이 떵떵거리고 사는 사회에서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는 것이 불가능하다라는 국민 정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부분에서 일종의 책임감도 느끼고 관련 법규 개정에 나서고 있다.
행동하는 양심이고 싶다
- 사회활동을 인권변호사로 시작했는데 기억나는 사건은
오래전이지만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솔직히 인권변호사였지만 당시 경제적으로도 괜찮았다. 다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역할을 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기억나는 사건은 사노맹 사건으로 박노해를 변호했던 일이다. 그때 분위기로 사형선고까지 각오했는데 열심히 해서 무기징역으로, 항소심에서 다시 감형됐다. 이후 박노해 석방 추진위원회를 하면서 석방 때까지 활동했던 것이 개인적으로 제일 기억에 남고, 정말 부끄러운 우리역사인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도 변호사로서 잊을 수 없다. 아픈 역사다.
- 정계에 입문하셨는데
예전에 ‘젊은 피 수혈’을 당에서 했던 적이 있었지 않나. 그때 저는 미국에서 연수 중이었는데 당시 DJ의 특보단장이었던 정균환 전 의원에게서 정계입문 제의를 받았다. 한명숙 전 총리가 그때 입당 동기다. 결국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치 스승이시다.
- 본인의 의지도 있었을텐데
관심이 있었다. 정치야말로 사회전반의 물길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사회의 변화 발전이 제대로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 교과위원장일 때 고민 끝에 대학 등록금 취업후 상환제를 통과시켰는데 이후 반발도 많았다. 아쉬움이나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등록금 상한제를 도입할 때 어려움이 많았다. 보수언론에서는 저를 대학생들의 등록금 대출을 가로막고 있는 나쁜 위원장으로 매도하기도 했다.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등록금 상한제와 취업후 등록금 상환제가 도입됐지만 현재 취업후 등록금 상환제는 많은 문제가 있다. 첫째, 저소득층에게 지급하기로 했던 1천억원 장학금이 예산편성조차 되지 않아서 지급되지 않고 있다. 원래 2009년까지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지원되던 장학금 1천800억원을 정부가 없애려고 한 것을 야당과 시민단체가 강력하게 요구해서 유지하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둘째, 지나치게 까다로운 신청자격 기준과 높은 금리, 그리고 복리이자 때문에 취업후 등록금 상환제 이용률이 16%에 불과하다. 취업후 등록금 상환제의 전면적인 개정이 필요하다.
민주당 다운 민주당이 필요하다
- 도지사 선거 경선에 나섰다고 중도에 사퇴하셨는데 아직도 도지사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나.
당과 도민들이 저의 역할을 필요하다고 생각하신다면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경기도가 국가 성장동력의 근간이 돼야 하는데 점점 더 침체되고 있고 오히려 나라가 어려워지는데 기여할 정도로 걱정스러운 상태까지 가고 있는 것 같다. 정치 신념, 국민들에 대한 나의 생각과 애정, 섬김 등 안양지역에서 갖고 있었던 생각을 경기도 전체로 확대해 펼쳐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 지난 2008년 민주연대를 발족하고 줄기차게 민주당에 쓴소리를 하고 계시는데.
현재는 쇄신연대에서 활동 중이다. 민주당이 정당운영에 있어서 가장 민주적이고 진보적이여야 하는데 지금은 전 대표에 의해 거의 예전 민정당 수준으로 후퇴해 있다. 이러한 것들 때문에 우리당이 지지자들에게 더 이상 민주당을 지지해야할 의미와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고 패배의식을 확산시키게 되는 핵심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바로잡지 않으면 우리당의 존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며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열심히 하고 있다.
- 전당대회가 열리는데 당권에 왜 도전하지 않았는가
이번에는 젊은 사람들이 나와 당을 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또 도지사 경선을 치르면서 물심양면 고통도 있었고 많이 지쳤다. 민주당이 앞으로 바뀌어야 겠다는 생각들이 너무 많이 들어 이번에는 동참하는 것보다 저변에서 민주당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했다. 당분간은 지도부에 대한 생각 없이 쓰고 아픈 얘기를 내 스스로와 민주당에 할 것이다. 이번 전당대회는 정상적이라 볼 수 없다. 전 대표가 당에서 전횡을 해왔고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 조강특위에서 갑자기 지역위원장 공모를 공고하고 자기 사람심기를 자행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완전개방형 전당원투표제가 빠졌는데, 지지기반이 약한 사람이 소수의 자기사람심기와 당헌당규의 개악을 통해 권력을 잡으려는 사욕이 다시한번 드러난 것이다. 참으로 유감스럽다.
- 후보자 중 누구를 지지하고 있나
지지후보와 관련해서는 현재 천정배 전 장관 캠프의 총괄본부장을 맡고 있다.
주거환경사업 정부가 책임져야
- 안양시민들이 3차례에 걸쳐 뽑아주셨는데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최근의 지방선거와 재보궐 두 선거를 거치면서 정말로 민심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안양의 경우 단체장을 비롯해서 광역의원, 기초의원 모두 다수의석을 차지해 안양 지역에서는 민주당이 이른바 여당이자 다수당이 됐다. 정말 겸손한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3차례나 저를 국회의원으로 선출해 주셨는데, 안양을 위한 저의 애정과 노력을 어느 정도 인정해 주시고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 지역에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지금 안양지역 뿐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LH의 주거환경개선사업 등의 개발사업 포기선언으로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거의 민란이 나지 않을까 걱정되는 수준이다. 어떤 지역에서는 자살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 이 지역이 다른 개발지역과 다른점이 많은가
문제가 되고 있는 안양 5동, 9동은 주거환경이 노후돼 철거가 불가피한 지역이 80~90%다. 정부가 환경 개선을 위해 LH에 사업을 맡긴지 오래 됐는데 재정이 없다고 하면서 아직까지 불투명한 상태다. LH공사와 국가의 공적인 약속을 믿고, 그 신뢰에 기반해서 어떤 일들을 했는데 그로 인해 인생이 송두리째 뽑히고 무너져 내린다면 국가의 존재가 왜 필요하겠나. 이번 일은 국민에게 피해가 없도록 대통령이 나서서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국회에서도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입법 등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정치인으로서 지역 주민이나 국민들에게 ‘이종걸’ 하면 무엇을 떠올렸으면 하나.
희망이라는 말을 떠올릴 수 있는 정치인, 일잘하는 정치인이었으면 좋겠다.
대담=최종식 정치부장
정리=구예리기자 yell@ekgib.com
약 력
▶서울대 졸업, 사법시험 합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인권변호사 ▶천주교 인권위원회 위원,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 ▶16·17·18대 국회의원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독립운동가 조부의 삶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의 생애를 조명한 특별기획 5부작 드라마 ‘자유인 이회영’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독립운동가이자 항일무장투쟁에 인생의 모든 것을 바친 아나키스트로서의 삶을 일본인 종군기자 기무라 준페이의 눈으로 그려내면서 시청자들로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인지 궁금해하는 시청자들을 위해 이종걸 의원은 “기무라 준페이 기자나 독립운동가 홍정화는 인간 이회영을 보다 객관적·인간적으로 조명하기 위한 가상의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회영 선생의 삶은 그야말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았다고 강조한다.
‘자유인 이회영’ 드라마 보며 ‘삶과 죽음 치열했던 삶’ 절감
이 의원은 “독립운동을 시작한 1900년부터 1932년 돌아가실 때까지 할아버지는 목숨을 내놓은 죽음과 삶의 경계선 생활을 하셨다”며 “한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쉽지 않은 끔찍한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 의원은 ‘조부가 활동했던 현장에서 나오는 느낌과 혼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싶어’ 조부의 삶의 궤적을 뒤따라가보겠다고 결심하고, ‘다시 그 경계에 서다’라는 저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책을 쓰기 위해 조부와 양명학파 선비들이 망명한 발자취를 따라 광양, 강화도, 안동 등과 중국의 삼원도 신흥무관학교터, 요순 감옥, 한중 우의공원 등을 다녀왔다.
그래서인지 그의 저서에는 흔히 정치인들의 저서에서 볼 수 있는 ‘자기자랑’이 아닌 생생한 역사와 독립운동가들의 치열한 삶이 묻어나온다.
그는 “조부님은 완벽한 인간이었다. 마치 애국을 종교로 하는 수도승같은 삶을 사셨다”며 “하나하나가 우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대단한 인물이기 때문에 저로서는 저의 할아버지라 주장하기에도 과분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역사에 묻혔던 이회영 선생이 주목받으면서 이 의원에게는 수많은 격려가 쏟아지고 있다.
이 의원은 “‘독립운동가분들이 고생을 했으니 그 후손은 무조건 잘 살아야 한다’, ‘고결하고 처절한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선조분의 뜻을 마음에 새겨 참다운 정치를 해달라’는 등 무수히 많은 응원의 메시지를 받았다”며 “이분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정치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구예리기자 yell@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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