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서호(印象西湖)’와 수원 화성

여행 가방을 여니 ‘인상서호’라고 적힌 부채가 눈에 띈다. 지난 8월 제4차 한중일 관광장관회의에 참가 차, 중국 항조우에 다녀올 때 기념품으로 받은 선물이다. 부채 전면에 한자로 ‘인상서호’라는 글씨가 있고 뒷면에 인상서호를 소개하는 글이 적혀 있다. 시우호(西湖)에 전래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붉은 수수밭과 베이징 올림픽 개·폐막식을 연출한 것으로 유명한 장예모 감독이 만남, 사랑, 이별, 추억, 인상의 5부작으로 구성된 인상서호를 시우호에서 연출하고 있다. 전래 이야기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시우호 인근에 사는 청년 ‘허선’이 성묘 후 배를 타고 건너던 중 ‘백랑’이라는 묘령의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백랑은 천년 묵은 뱀이 변신한 여인이다. 관음보살로부터 8방울의 눈물을 얻으면 신선이 된다는 말을 듣고, 7방울의 눈물을 찾아 항조우를 찾던 중 허선을 만난 것이다. 금산사 법해선사의 도력으로 백랑은 원래의 모습인 뱀으로 변신한다. 허선은 백랑을 피해 법해 선산에게 몸을 의탁한다.

 

아름다운 자연은 훌륭한 자원

허선을 구하기 위해 백랑은 법해선사에게 무릎을 끓고 빌지만 마음을 돌리지 못한다. 백랑은 허선을 구할 목적으로 시우호의 물로 금산사를 물바다로 만들며 법해 선사와 겨루지만 지고 만다. 꿈속에서 백랑의 진심을 알게 된 허선은 백랑과 시우호 단교정에서 재회하고 아이를 낳는다. 법해 스님은 뱀이 인간과 사랑을 나누어 아이를 낳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며, 눈물을 흘리는 백랑을 뇌봉탑에 가두고 탑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977년에 건립된 뇌봉탑은 오랜 풍화침식으로 약해진다. 신해혁명 후 뇌봉탑의 벽돌이 귀신을 쫓거나 아들을 낳게 하는데 효험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탑의 벽돌을 빼가는 사람이 많아졌고, 1924년 9월 천년을 버티던 뇌봉탑이 무너진다. 뇌봉탑이 무너진 후 백랑의 눈물인지 반짝이는 7개의 명주가 나왔다고 한다. 허선과 백랑의 이야기는 서극 감독이 연출하고 왕조현이 출현했던 영화 ‘청사’의 줄거리이기도 하다. 장예모 감독은 시우호에 전래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400여 명의 지역민이 참가하는 ‘인상서호’라는 초대형 수상극을 만들어 세상에 선보였다.

 

자연과 문화 그리고 관광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은 그 무엇보다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일상생활에서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사람들은 여행한다. 뮤지컬 미스 사이공이 요즘 한국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지만, 뉴욕에서 막을 내리기 전 미스 사이공은 뉴요커는 물론이고 뉴욕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꼭 봐야할 인기 있는 문화 관광 상품 중 하나였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콘텐츠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난타, 점프 등은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즐겨 찾는 콘텐츠다.

 

문화상품은 최고의 관광상품

중국 항조우의 시화호에서 개최되는 인상서호와 뉴욕에서 공연됐던 미스사이공은 공통의 키워드가 있다. 문화를 새롭게 해석하고 그 문화를 바탕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관광 상품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수원 화성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화성에서 매년 많은 예산을 들여 문화축제를 한다. 그러나 이 축제를 보려고 찾는 국내외 관광객의 수는 많지 않다.

 

수원 화성과 같이 세계적인 문화자원을 갖고 있는 경기도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경기도의 문화가 더 큰 꽃을 피우고, 국내외 관광객이 주목하는 관광 목적지가 될지, 문화는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 그 자체이며, 삶의 궤적이다. 풍요로운 문화는 지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문화와 연계된 문화상품은 훌륭한 관광상품이 되기도 한다. ‘인상서호’ 글자가 적힌 부채를 펴면서 화두를 마음에 담는다.  한범수 한국관광학회장ㆍ경기대 관광개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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