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유혹과 싸우는 인간의 내면

조경란, 비극적 가정사 모티브로 장편소설 출간

가족의 트라우마가 그 구성원의 운명을 지배한다는 건 불문율이다. 소설가 조경란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할머니가 복어국을 마시고 자살했다는 건 알려진 사실이다. 그건 그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지만 그 비극은 작가인 그를 내내 압도해 왔다. 그런 그가 12번째 장편인 ‘복어’(문학동네 刊)를 통해 그 ‘비극’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냈다.

 

전작 장편 ‘혀’에서 이미 “복어 요리를 좋아하는 것은 죽음의 가능성 때문”이라고 했던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복어를 매개 삼아 본격적으로 죽음의 문제를 파고들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맹목적으로 죽음의 유혹에 사로잡힌 이들이다. 그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한 주인공들의 분투 과정을 통해 죽음에 대해 다양한 사유를 전개한다.

 

소설 속의 ‘그녀’와 ‘그’는 각자 복어 독을 먹고 세상을 뜬 할머니와 투신자살한 형을 가슴에 묻고 산다. 그러나 ‘그녀’가 할머니처럼 늘 죽고 싶은 유혹에 빠져 사는 반면, ‘그’는 투신 직전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온 형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책한다.

 

소설은 ‘그녀’의 이야기와 ‘그’의 이야기를 한 장(章)씩 번갈아가며 전개하는데 서로 타인이었던 두 남녀가 한국과 일본을 오가다 우연히 만나 사랑을 시작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이들이 말하는 죽음은 아주 말랑말랑한 은유와 상징의 덩어리로 변한다. 슬픔과 아름다움과 두려움과 죽음이라는 예술의 원형을 찾아가는 소설이기도 하다.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이 서로 아는 두 사람이 되어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지향한다. 값 1만1천원

 

윤철원기자 ycw@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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