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힘인데, 왜 모르는 것이 약일까

‘아는 게 힘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왜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도 있는 것일까? 심지어 ‘아는 것이 병이다’라는 말도 있다. 이처럼 서로 모순되는 속담들이 꽤 있다. 예를 들어,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라’라는 말이 있는 반면에, ‘바른 말 하는 사람 귀염 못 받는다’라는 말도 있다. ‘돈이 제갈량’이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돈만 있으면 못난 사람도 제갈량과 같이 될 수 있듯이 돈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 ‘돈은 만악의 근원이다’ 혹은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이요,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이다’라며 돈이 인간에게 큰 불행을 안겨다주는 요인임을 지적하는 속담들도 있다. 그렇다면 어느 말이 옳은가?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우선 속담은 학자가 만든 과학적 진리가 아니라 대중이 만든 경험적 진리이기 때문이다. 경험에 입각한 것이다 보니 주관성을 담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상호 모순적인 속담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정말로 서로 모순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일까? 사실 표면구조만 그럴 뿐 그 내용은 결코 그렇지 않다. ‘거짓말하고 뺨 맞는 것보다 낫다’라는 속담은 정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반면, ‘거짓말도 잘만 하면 논 닷 마지기보다 낫다’라는 속담은 정직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도 필요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라’ 역시 정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인 반면에 ‘바른 말 하는 사람 귀염 못 받는다’라는 말은 정직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상대가 불쾌할 수 있는 말은 직설적으로 하지 말고 완곡하게 하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돈은 만악의 근원이다’나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이요,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이다’라는 속담은 ‘돈이 제갈량’이라는 속담에 담겨 있는, 인생에 있어 돈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돈에 대한 집착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말인 것이다.

 

그렇다면 속담은 왜 이렇게 일견 모순되는 듯한 표현을 쓰는가? 왜 속담은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는가? 그것은 속담이 기본적으로 은유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 속담이건 은유를 통해 우회적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이를 통해 설득력을 높인다. 또한 간결하고 운율적인 형태를 취함으로써 전달력을 강화한다. 이는 속담의 보편적인 구조다. 바로 이 때문에 처음 보는 외국의 속담도 바로 그것이 속담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은유와 은율 구조로 인해 속담은 함축적이다. 따라서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안 되고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의미를 해석해야 한다.

 

‘아는 것이 병이다’는 차라리 몰랐으면 실수하지 않았을 상황을 가리킨다. 인생의 많은 상황이 그러하다. ‘모르는 게 약이다’는 어설픈 지식 습득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즉 어설프게 알 바에야 차라리 모르는 것이 더 나은 것이다. ‘책을 읽지 말라’는 성철 스님의 말씀은 독서의 무용성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어설픈 독서의 위험을 경고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돈은 만악의 근원이다’에서 악의 근원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돈에 대한 집착인 것이다.

 

따라서 모순 속담들은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면 사실은 모순적이지 않다. 서로 충분히 양립가능하다. 그러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하고 이에 맞는 속담을 인용하고 그로부터 올바른 교훈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박 만 규

아주대 불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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