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연평도 포격> 방공호 대피주민 증언
포격에 놀란 주민들 몰려 방공호 순식간 아수라장
전기·통신 끊겨 ‘공포의 밤’…오전부터 피난 행렬
팔순을 훌쩍 넘긴 오효재 할머니(83·옹진군 연평면 중구리)는 아직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다.
갑자기 엄청난 굉음과 함께 서쪽 하늘에서 섬광이 번쩍이면서 화염이 치솟았다. 6·25 전쟁도 겪었지만, 하늘이 두쪽으로 갈라지는 것 같았다.
김장을 담구고 있었던 오 할머니는 처음에는 귀를 의심해야만 했다. 이날 오전 내내 면사무소로부터 군부대가 훈련을 받고 있다는 방송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또 전쟁이 터졌는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엄습했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소금에 절여 놓은 배추를 세숫대야로 대충 덮어 놓고 얇은 스웨터에 ‘몸빼’ 바지 하나만 입은 채 집에서 50m 정도 떨어진 방공호로 달음박질 쳤다. 6·25 전쟁때 황해도에서 연평도로 피난왔던 오할머니는 60여년 동안 연평도에서 살았지만 이번과 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유경순씨(53·옹진군 연평면 남구리)는 북한의 포격이 시작될 때 장화를 신고 있었다. 이날 오후 2시께 초등학교 급식소에서 방과후 수업을 듣고 있던 코흘리개들에게 줄 음식을 준비하느라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처음에는 해병대가 사격훈련을 하는 소리인가 싶었다. 그러나 지척에서 ‘쾅’하고 터지는 폭음에 놀라 신발도 바꿔 신지 못하고 학교 뒷편 방공호로 뛰어 들었다. 순식간에 방공호는 북한의 포격에 놀란 주민들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방공호 안에서도 무섭긴 마찬가지였다. 방공호 안에선 휴대폰도 불통이었다. 전기는 아예 들어오지 않았다. 유씨를 포함한 주민 40여명은 이불이 없어 각자 집에서 이불을 가져와 덮어야만 했다.
유씨 등이 들어간 방공호를 포함, 연평도내 방공호 19곳은 모두 1974~1975년 집중적으로 만들어져 낡은데다 전기도 공급되지 않아 주민들이 대피해 생활하기에는 불편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방공호에서 24일 오전 나올 때까지 무려 17시간 동안을 배고픔과 추위에 떨어야만 했다.
유씨는 “지난 밤은 너무 무서웠다”며 “북한의 폭격으로 집이 불탔는데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24일 오후 1시30분께 인천항 해경함정 전용부두는 연평도 포격현장을 빠져 나오는 피난행렬이 뒤엉키면서 일순간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오효재 할머니의 딸 서복순씨(58·여)는 어머니를 보고 단숨에 달려가 눈물을 흘렸다. 오 할머니가 딸을 보고 처음 꺼낸 말은 “너무 배고프다”였다. 어제 오후부터 사발면 하나 먹은 게 전부였다. 서씨는 가방에서 요구르트를 꺼내 어머니에게 드렸다.
이창열·박용준기자 trees@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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