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속 1천여 명 순국선열의 넋 기려
전날 밤부터 내린 비조차 91년 전 일제의 총칼에 온몸으로 저항한 순국선열의 넋을 기리기 위해 모여 든 시민들의 열기를 식히진 못했다.
3월 1일 화성시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지에서는 화성시와 경기일보가 주최하고 화성문화원이 주관한 ‘아! 제암리-고통을 넘어선 화합, 그리고 희망’ 제91주년 3·1절 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기념식은 궂은 날씨에도 최영근 화성시장과 이태섭 화성시의회 의장, 김성회·박보환 국회의원, 안용웅 제암리유족 대표, 기봉서 화성문화원장, 이현락 경기일보 사장 등 내외빈을 비롯해 독립유공자와 주민, 학생 등 1천여명이 참석해 3·1 운동 정신을 기렸다.
최영근 화성시장은 기념사에서 “화성시의 독립운동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혁명적인 모습과 종교적 이질감을 극복한 인간적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특성이 있다”며 “오늘의 행사가 충절의 고장에서 살아가는 화성시민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이현락 경기일보 사장은 “최근 한 조사 결과 초등학생 절반 이상이 3·1운동의 의미를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아이들에게 지금의 우리가 있기까지 수많은 호국영령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일깨워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919년 4월 15일 오후 2시 화성시 제암리에서는 일제의 방화 및 총살로 23명의 교인이 순교하고 마을전체가 불바다가 됐다.
서울에서부터 일어난 3·1운동의 여파는 화성 일대까지 이어져, 3월 31일과 4월 5일 향남면, 장안면 일대에서 2번의 대규모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에 주도적 역할을 한 제암리교회 성도들을 상대로 일제의 보복이 감행됐다. 일본군은 제암리교회 성도 21명을 예배당으로 모이게 한 후 교회 문에 못질을 해 가두고 짚단을 쌓아 석유를 뿌려 불을 질렀다. 그리고 불타는 예배당에 집중사격을 가했다.
이날 교회에 감금됐던 남자 21명과 교회 밖 부녀자 2명 등 23명이 일제의 총칼에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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