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기 행사 중 제일 첫 번째
아무리 배추값이 금값이라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김장철에는 김장을 담그지 않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아쉬움이 크다. 그리고 그 아쉬움은 겨울철 내내 사라지지 않아 김장김치만 담궈도 겨울나기는 일단 성공한 것처럼 마음이 뿌듯한 게 주부들의 마음이다.
어렸을 적, 이맘때면 으레 치렀던 김장 행사의 떠들썩한 풍경이 떠오른다. 집 앞 마당에는 배추가 잔뜩 쌓여 있고, 이웃집 아줌마들이 손에 고무장갑을 들고 하나 둘 모여들면 온갖 수다와 함께 김장 담그기가 시작된다.
야채를 한 가득 썰어넣어 소를 만들고, 산더미만한 배추를 굵은 소금에 절여 숨이 죽을 때를 기다리는 일련의 작업이 얼추 마무리되면, 뒷정리와 동시에 눈을 굴리며 김장을 지켜보던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새참시간이 다가온다.
삶은 배추에 편육을 싸 먹는 보쌈에, 갓 버무린 소를 배춧잎에 돌돌 말아 입 안에 넣어 주시던 엄마의 손길, 속이 아린줄도 모르고 너무 많이 먹어 밤새 배앓이를 하던 기억들까지….
식구 수가 적어지고 아파트 생활을 주로 하게 되면서 예전 같은 의미는 없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겨울철 우리네 식탁을 책임질 가장 큰 저장식은 역시 ‘김치’다.
비록 10포기 안팎의 김치를 담그더라도 재료 구입에서부터 마지막으로 용기에 담고 저장하기까지, 과정 하나하나는 옛 방식과 거의 변함이 없다. 겨우내 반찬 걱정없이 여유로웠던 그 느낌을 우리 가족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주고 싶다면, 올 겨울 김장담그기에 도전해 보자.
추, 손으로 들어서 단단하고 묵직한 느낌
젓갈, 원산지·제조업소명·소재지 꼼꼼하게 살펴야
몸에 좋고 활용도 높은 김장, 100% 성공할 수 있는 노하우는 뭘까? 비결은 바로 ‘재료’다. 오래 두고 먹을 김장김치는 뭣보다 재료 선택을 잘 해야 한다. 김치 재료 중 가장 기본적인 배추와 무에서부터 양념과 젓갈류, 김치 맛을 더욱 좋게 하는 맛내기 재료까지 제대로 골라야 실패확률이 낮다.
재료는 일반적으로 주재료와 부재료로 사용되는 ‘채소류’와 김치의 색과 맛을 내는 기본 ‘양념’, 곰삭은 발효의 맛을 좌우하는 ‘젓갈류’, 집안마다 혹은 지방마다 이색적으로 첨가하는 ‘맛내기’ 재료 등으로 나뉜다.
김장김치 재료 중 가장 기본적인 배추와 무에서부터 양념과 젓갈류, 김치 맛을 더욱 좋게 하는 맛내기 재료까지 제대로 고르는 요령을 알아본다.
▲배추
배추는 들어보았을 때 묵직한 것을 고른다. 겉잎의 흰색과 녹색의 대비가 선명한 것이 좋고 겉잎에 검은 반점이 있는 것은 속까지 그럴 수 있으므로 피한다. 배추 속잎을 떼어서 먹어 보았을 때 달고 고소한 맛이 나야 하고 줄기의 흰 부분을 눌러 보았을 때 단단해야 수분이 많고 싱싱한 것이다.
▲무
무는 바람이 들지 않고 모양이 미끈하며 싱싱한 무청이 달려 있는 것이 좋다. 손으로두드려 보아 단단한 느낌이 들어야 한다. 같은 크기의 무라면 무거우면서 흰빛을 띠는 것이 좋다. 무청이 붙어있는 쪽을 잘라 봐서 바람이 들었거나 병충해의 피해를 입은 것은 피한다. 무청이 그대로 달려 있고 흙이 묻어 있으면 싱싱한 것이다.
▲총각무
일명 ‘알타리무’라고 하는 총각무는 무청이 파랗고 싱싱하며 알이 단단하고 심이 없는 것이 좋다. 무청 달린 쪽으로 갈수록 모양이 점점 굵어지는 것을 고른다.
▲굵은 파
파는 크게 굵은 파, 쪽파, 실파로 나뉜다. 그 중 굵은 파는 뿌리 쪽을 만져 보았을 때 단단하고 흰 줄기 부분에 윤기가 나는 것을 고른다.
▲실파
실파는 머리 부분이 통통하고 둥글며 잎이 짧고 가늘며 부드러운 것을 고른다. 김치 양념으로 넣는 것 외에 파김치를 담글 때도 쓴다.
▲미나리
미나리는 줄기가 가는 것 보다는 통통하며 약간 짧고 잎이 연하면서도 무성한 것이 좋다. 색깔은 전체적으로 불그스름하면서 수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야 한다. 뿌리를 잘라 내고 누런 잎을 떼어 손질한다.
▲갓
갓은 색에 따라서 붉은 갓과 푸른 갓이 있는데, 붉은 갓이 향이 더 진해 배추김치나 깍두기에 주로 쓰고, 시원하고 깨끗한 맛을 내는 푸른 갓은 동치미나 백김치에 주로 넣는다.
▲고춧가루
추석 전후로 수확해 꼭지를 따고 햇볕에 말려 곱게 빻은 고추의 품질이 가장 좋다. 빛깔이 곱고 붉은색이 선명하며 꼭지가 가늘고 약간 노란빛을 띠는 최상품의 마른 고추를 구입 껍질을 닦고 곱게 빻는다. 고춧가루로 구입할 때는 가루가 곱고 밟은 선홍색을 띠는 것을 고른다.
▲마늘
한 통에 6쪽이 들어 있는 육쪽 마늘을 최고로 친다. 알이 단단한 것, 쪽의 크기와 모양이 일정한 것, 쪽과 쪽 사이의 골이 확실한 것, 마늘대가 길고 껍질 색깔이 자줏빛이며 뿌리가 잘리지 않을 것이 맛있는 마늘이다.
▲생강
알이 굵은 것을 골라서 마디를 끊어보아 가느다란 실이 없는 것을 고른다. 껍질을 숟가락이나 칼등으로 살살 긁어 낸 다음 깨끗이 씻고 곱게 다져서 사용한다.
▲굵은 소금
‘호렴’이라고 부르는 굵은 소금은 배추나 무를 절일 때 사용하는 것으로 물기가 적고 깨끗한 빛이 돌아야 좋다.
▲가는 소금
‘재염’이라고 부르는 가는 소금은 김치 소가 싱거울 때 간을 맞추는 데 사용한다.
▲설탕
김치 소를 만들 때 설탕을 약간 넣어 주어야 맛이 부드러워진다. 너무 많이 넣으면 단맛이 진해지므로 맛을 보아 가면서 넣도록 한다.
▲멸치젓
살이 흐물흐물할 정도록 잘 삭고 멸치의 크기가 중간 정도인 것을 고른다. 비린내가 나지 않고 단내가 나는 것이 좋으며, 비늘이 적고 뼈와 머리가 완전히 붙어 있는 것이 맛도 좋고 영양가도 높다.
▲새우젓
산란기인 6월에 담가 맛이 좋고 오래 저장할 수 있는 육젓과 가을에 담가 충분히 삭지 않은 추젓이 있는데, 김장에는 대부분 이 두 가지를 섞어 쓴다. 잡어가 섞이지 않고 새우살이 밝은 색을 띠며 껍질이 얇고 살이 통통한 것을 고른다.
▲생태
배추김치, 무김치, 파김치 등에 두루 어울리는 생태는 눈이 파랗고 탄력이 있으며 뽀얀 우윳빛을 띠는 것이 싱싱하다. 뼈와 껍질을 발라내고 2~3㎝ 크기로 포를 떠서 고춧가루, 파, 마늘 등의 양념에 하루정도재었다가 사용하는 것이 좋다.
▲굴
시원한 맛을 내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굴은 통통한 것이 싱싱하고 좋다. 굴은 조리나 체에 담은 다음 소금물에 넣고 흔들어 씻은 후에 사용한다.
▲찹쌀가루
김치 양념에 찹쌀풀을 넣으면 당화작용을 일으켜 감칠맛을 더 낸다. 냄비에 물 1컵을 붓고 찹쌀가루 3큰술을 넣어 풀을 쑨다.
김장 맛 일등공신, 젓갈의 ‘원조’를 찾아
/소래포구, 김장철 앞두고 ‘북적’
배가 들어오는 곳이 포구인 것은 당연하지만, 인천시 소래포구(남동구 논현동)엔 특히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인근의 시흥, 김포의 월곶포구·대명포구 등이 있어 오고 가는 사람들을 많이 끄는 것도 이유지만, 인심좋은 선주(船主) 아주머니들이 덤으로 한 움큼씩 쥐어주는 젓갈과 갓 잡아 포를 뜬 싱싱한 회맛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서울과 경기도권에서 1시간 내외로 경유할 수 있다는 지리점 잇점도 한 몫한다.
기자가 취재를 간 10월 중순엔 제10회 소래포구 축제(10월7일~10일)가 열려 발 디딜틈 없이 늘어선 인파가 볼거리를 더했다.
질퍽한 바닷물을 질벅질벅 밟으며 사람구경도 하고, 펄떡펄떡 뛰노는 게, 잡어 등 생선도 구경하고, 아기 손바닥만한 왕 튀김새우도 손에들고 베어물며 나서는 구경길은 그 자체로 행복이다.
특히 11월에서 12월까지 이어지는 김장시즌에 없어서는 안 될 베스트 아이템인 새우 ‘육젓’과 ‘오젓’을 사러 나선 할머니, 아주머니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엄마, 어디 갈려구? 여기 싸요. 뭐해 먹게? 김장 담글거야? 그럼 육젓이 최고지!”
처음 보는 할머니 손님을 대번 친정엄마로 만들어버리는 구수한 입담의 젓갈장수 아주머니는 1됫박(3kg)에 1만원을 거듭 외치며 안 사도 좋으니, 맛이나 보고 가라며 연신 새우젓을 흔들어댄다.
포구를 따라 한참을 늘어선 젓갈부스를 지나 소래포구어시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니, 이 곳이 별천지다. 수북히 쌓아놓은 튀김더미가 어른 허리높이까지 차올라 아이들의 눈망울을 연신 굴리게 만들고, 각종 잡어를 튀겨놓은 생선튀김 냄새는 배고픈 식객들의 허기를 자극한다.
여기에 뒤집개로 연신 뒤집는 국화빵의 예쁜 꽃모양하며, 술빵·호빵·만두는 김을 모락모락 풍기며 시장통 풍경을 연출한다.
초·중등생 아들 둘을 남부럽지 않게 가르치겠다는 일념으로 연신 구슬땀을 흘리는 진양섭씨(47·서해상회)는 아내와 이 곳에 터를 잡은 지 어느새 8년여의 시간이 흘렀다고 한다.
포구 입구서 진 자리에 엉덩이 젖어가며 어머님이 하시던 젓갈장사를 이어받았지만, 새벽 칼바람에 덜덜 떠는 아내의 고생을 덜어주기 위해 포구와 조금 떨어진 마른 땅에 깔끔하게 지은 소래포구원조젓갈상가 내 점포에 세를 들었다고.
“소래포구가 유명한 건 사실이예요. 특히 요즘같은 김장철엔 대목이지요. 하지만 올 해엔 작년에 비해 30~40% 매출이 줄었어요. 태풍과 폭우 등 자연재해로 빚어진 일이지만, 김장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아 젓갈도 사러오지 않는 손님들이 많아 힘드네요.”
힘들다는 말과 달리 얼굴엔 생기가 가득한 이들 부부는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매달려야 하는 젓갈장사지만, 보물단지 마냥 곱게 들여놓은 드럼통 대여섯개서 풍기는 육젓의 새큰한 냄새가 세상 그 어떤 향수보다 향기롭단다.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연신 삼지창 같은 삽으로 15여종이나 되는 각종 토굴젓을 퍼 올리고, 부인은 앙증맞게 진열된 판매코너에서 25종의 반찬젓갈을 판매하느라 정신이 없다.
명란젓, 황석어젓, 꽃게장, 멍게젓, 조개젓, 오징어젓, 낙지젓, 굴젓, 꼴뚜기젓, 무말랭이, 쌈장젓갈, 곤쟁이젓 등은 모두 400g 기준 5천원에서 1만5천원선. 부인의 마음에 드는 손님이 있으면 덤에다 할인까지 해준다.
김장은 집안의 밥 맛을 좌우하고 일년 식량을 비축하는 주부들의 연례행사. 바로 김장에 빠져서는 안 될 감초이자 김장 맛을 좌우하는 ‘젓갈’, 올핸 소래포구서 포구의 낭만도 느껴보고 질 좋고 값싼 젓갈도 한 움큼 낚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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