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복지공동회의 등 25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가정상비약 약국 외 판매를 위한 시민연대’가 최근 기자회견에서 밝힌 주장은 관철돼야 한다. 이들은 가정상비약 약국 외 판매 허용의 당위성으로 현행 의약품 2분류(전문의약품·일반의약품) 체계를 전문의약품·약국 약·자유판매약 등 3분류로 변경할 것을 내세웠다. 여기서 자유판매약은 소화제·진통제·해열제·감기약 등 가정상비약이다. 이는 종전 주장에 비해 훨씬 후퇴한 요구다. 최근 한국소비자원도 일반의약품을 약국이 아닌 곳에서도 판매할 수 있게 해 줄 것을 보건복지부에 건의했다.
심야 활동 등 인구가 많은 도시지역에서도 가정상비약의 약국 외 판매는 필요하다. 하물며 약국이 크게 부족한 농어촌지역에서의 약국 외 판매는 더욱 절실하다. 한국소비자원의 자료에 따르면 전국 215개 기초행정구역(1읍, 214면)엔 아예 약국이 없다. 우리나라 전체 약국 2만831곳 중 91.6%인 1만9천79곳이 시 단위 이상 도시지역에서 영업을 한다. 군 단위 시골지역엔 1천752곳(8.4%)밖에 없다. 농어촌 의료여건은 이렇게 취약하다.
더구나 대한약사회가 공휴일 의약품 구입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당번 약국제’를 실시했으나 참여율이 극히 저조하다. 지난해 7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심야응급약국 시범사업’도 야간에 문을 여는 약국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작 심야에 약을 구하기가 어려워 배려가 더 절실한 농어촌 산간지역과 중소도시는 심야응급약국이 아예 설치되지 않았고, 대도시 중심으로 운영돼 지역적 불균형의 문제가 심각하다. 군 단위 이하 농촌지역 상당수의 주민들은 소화제 한 알도 제때에 사 먹기 어렵다는 얘기다. “의료취약지역에 살고 있는 것도 억울하고 서러운데, 상비약도 마음대로 살 수 없다면 너무 속이 상한다. 검증된 단순의약품만이라도 동네 슈퍼마켓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농민들의 하소연이 안 나올 수 없다.
문제는 6만여 약사들의 단체인 대한약사회의 반발이다. 일반의약품도 약사의 복약(服藥)지도를 통해 안전하게 사용되고 관리돼야 한다고 한결같이 반대한다. 하지만 약사도 각종 병환에서 국민을 보호해야 할 공인이다. 도시지역에서의 약국 외 판매에 당장 동조하기 어렵다면 약국 없는 농촌지역에서만이라도 가정상비약을 구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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