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망(亡) 조봉암 유죄부분을 파기한다” 지난 20일 대법원 전원합의부 이용훈 재판장이 낭독한 대법관 전원일치 판결의 주문이다.
1959년 7월3일 당시 대법원에서 사형이 선고된, 간첩 및 국가변란죄 누명을 뒤집어 쓴지 18시간만에 서둘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 52년만이다.
무죄를 내린 재심은 간첩 혐의의 유일한 직접증거인 증인 양모의 진술은 특무부대가 민간인을 영장없이 연행해 수사하는 등 불법으로 확보해 믿기 어렵고, (피고인이 당수이던) 진보당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거나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배했다고 볼 수 없어 국가 변란을 목적으로 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 판결 요지다.
죽산 조봉암은 혁신주의자다. 1945년 광복 직후 조선공산당의 박헌영과 결별 하면서 공산주의를 일탈했다. 일제강점 시 그의 공산주의 활동은 민족저항운동의 방편이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초대 농림부장관으로 보인 농지개혁은, 이도 지주와의 보혁전쟁이다. 그때 같은 시기에 있었던 북의 농지개혁은 권력에 의한 무상몰수 무상분배로, 사실상 국가가 지주가 되고 농민은 소작농이 되는 것이어서 쉬웠다. 이에 비해 신생 대한민국은 유상몰수 유상분배로, 개인의 소유권 존중에 난점이 많았으나 죽산은 심혈을 기울여 추진했다.
진보주의는 맞아도
그러나 알아둬야 할 분명한 사실이 있다. 죽산은 혁신세력의 진보주의자일 뿐, 종북주의자는 결코 아니다. 진보당 사건이 무죄가 났다 하여, 지금의 종북주의 좌파세력이 무슨 살판이 난 것으로 여긴다면 착각이다. 죽산의 진보주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려 한 것으로, 자본주의 모순을 소극적으로 극복하려는 보수와 차별화 된다. 그를 처형한 이유였던 북의 동조(간첩) 흔적은 없다.
지금은 보수주의인 내가 진보주의에 심취, 광주 충장로에 있었던 진보당 전남도당 사무실을 들락거렸던 것은 서울 집에서 가출후 입대하기 전이다. 제대하고 나서 제2공화국 지방의원선거 때 서울시서대문구 제5선거구(홍제·홍지·부암 등)에서 나선 시의원 후보 선거구호 ‘무산계급에서 나온사람, 무산대중이 밀어주자’는 것 또한 그 영향이다. (그땐 이미 죽산이 처형당한 이후로, 무소속 기호 2번이었다) 장황하게 이런 말을 하는 덴 이유가 있다. 진보당 안에 들어가서 본 체험상으로도 국가 변란의 기미는 추호도 없었고, 그 연유로 혁신적 신거구호를 내건 나 역시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죽산이 만약 공산주의자였다면 1956년 5월15일에 있었던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의 간담을 서늘케한 유효득표수의 30%인 216만3천808표를 얻을 수 없었다. 왜냐면 그 무렵은 1953년 7월27일 6·25가 휴전된 지 불과 3년도 안되어, 남침에 대한 공산당 저주의 국민감정이 한창이었기 때문이다.
집권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것은 있다. 예컨대 이승만의 통일구호는 북진통일이다. 이에 비해 진보당 정강은 평화통일이다. 혁신정치 구현의 진보당 강령은 이승만의 독재정치 저항이다. 죽산의 사형을 사법살인이라고 한다. 엉터리 재판으로 죽인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미스터리가 있다. 배후를 모른다. 반공청년단이 1심형을 가볍게 선고한 서울지방법원에 난입한 소동이 있긴 있었다. 사법살인을 이승만이 사주했다고도 한다. 개연성은 있다. 하지만 구체적 사유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종북주의는 아니다
돌아보면 조선공산당의 조봉암과 박헌영이 남과 북에서 비슷한 시기에 가당치 않은 죄목으로 처형된 것 또한 기이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부수상겸 외상 박헌영은 1955년 5월 민족보위상 최용건이 재판장이 된 최고재판소 특별군사재판에서 미제 고용간첩·분파주의·쿠데타 등 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됐다. 남로당 출신의 박헌영은 이렇게 죽산보다 4년전에 김일성에 의해 숙청 당했다.
죽산이 박헌영의 조선공산당을 비판한 것은 (당시 소련에 대한) 사상적 사대주의와 교조주의에 대한 반발이다. 지금의 종북적 진보주의자들은 진보당이 표방한 평양집단의 6·25죄과 비판 정강 정책에, 평양이라면 말한마디 못하고 사족을 못쓰는 자신들이 얼마나 못났는가를 깨달아야 된다.
죽산의 부활 반세기는 참으로 긴 세월이다. 그의 진보주의 복권은 종북적 진보주의자들에 대한 경고다. 또한 죽산의 부활은 종북적 진보주의자들이 얼마나 위장된 것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본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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