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보물의 수장고(收藏庫), 고달사지

동짓달 짧은 해가 뉘엿할 때 400년생 느티나무가 사천왕이라도 되는 듯 긴 가지를 내리고 통과의례를 한다. 신라 때 세워지고 고려왕실의 비호를 받은 대찰이 어이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까? 다섯 개의 보물 중 원종대사 혜진 탑비 귀부 및 이수는 그리스 조각 같은 이상미를 자랑한다. 비를 지고 있는 눈깔 띠룩한 거북의 발톱이 금방이라도 비천한 중생을 할퀼 듯하여 성급히 혜목산 자락에 올랐다. 국보 4호 고달사지부도의 섬세하고 화려한 자태가 사뭇 엄숙하다. 하얀 억새의 배웅을 받으며 언덕길을 내려올 때 등 뒤로 밀려오는 어둠의 속도가 세월처럼 저려왔다. 귀로에 비운 천서리 막국수 한 그릇이 나그네 미감을 감탄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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