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서 일궈낸 선구자적 삶은 항상 나의 정신(精神)을 전율케 했다. 서른 세 가구가 잿더미가 되고 23인이 제암리 예배당 안에 감금된 채 일본인이 지른 불에 학살되었다. 그날의 현장은 사적지로 지정되어 기념비가 세워지고 3·1정신 교육관, 순국기념관, 순국자 묘소 등이 성지화되어 잘 단장됐다. 견학 온 한 무리 초등학생들의 재잘거림이 잊혀진 세월처럼 무상해 보였지만 참상을 전시한 기념관 끝에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라는 글귀가 나로서는 용납되지 않았다. 흐린 2월의 끝자락, 민족 성지를 돌아 나오는 나의 가슴에 쉰들러 리스트의 테마뮤직 이자크 펄만의 바이올린이 애잔히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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