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취득세 인하 발표, 성동격서<聲東擊西>

중국 한(漢)나라의 유방(劉邦)과 초(楚)나라의 항우(項羽)가 서로 싸우던 중 위(魏)나라의 왕 표(豹)가 항우에게 항복했다. 항우와 표가 협공하는 위험에 처한 유방은 한신(韓信)에게 적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표는 황하의 동쪽 포판(蒲坂)에 진을 쳤고 한신은 적극적인 포판 공격의사를 내비치다 비밀리에 군대를 이끌고 민첩하게 표의 후방 본거지인 안읍(安邑)을 점령했다. 여기에서 유래한 고사가 성동격서(聲東擊西)로, 동쪽을 친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실제로는 서쪽을 공격함으로써 상대를 교묘히 속여서 전투에서 승리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지난주 정부의 취득세 인하 방침에 대한 발표는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부동산 거래가 활발하지 않으니 이에 대한 대책으로 주택거래 시 취득세의 50%를 감면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발표가 나오자마자 전국의 광역지방자치단체는 발끈하고 나섰다. 취득세는 지방자치단체의 주요한 세수원이라 지방재정 수입에 막대한 피해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경기도뿐만 아니라 경기도의회 여야도 한목소리로 이에 반대하고 나섰다. 일부에서는 부동산거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필요하다면 지방세인 취득세보다 아예 국세인 양도소득세를 낮추라고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과연 정부의 취득세 인하 발표가 진정으로 서민을 위한 부동산 거래 활성화 정책일까?

 

현재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은 것은 세금 때문이 아니다. 2008년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미국 발 금융위기는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더 이상 부동산이 투자대상이 되기 어렵다는 것을 시장은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어 아파트를 비롯한 주택가격은 하락했다. 요즘 전세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이유도 주택 가격이 더 떨어질 거라는 전망 속에 매수심리가 사라지고 매매보다는 전세를 선호하는 현상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따라서 이번 취득세 인하조치가 주택거래 활성화에 도움을 줄 거라는 정부 발표는 신뢰성이 없다.

 

부동산이 거래가 되려면 사는 사람이 있어야겠지만 파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부동산 거래를 할 때 가장 부담되는 것이 무엇일까? 사는 사람 입장에서 취·등록세가 부담이 클까, 아니면 파는 사람입장에서 양도세가 부담이 클까? 취·등록세는 현행 2~4%이지만 양도세는 6~50%까지로 당연히 양도세가 훨씬 부담이 클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실질적인 효과가 큰 양도세를 언급하지 않고 애먼 지방재정의 주 수입원인 취득세를 들먹였을까? 정책을 만드는 정부가 이러한 점을 몰랐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정부와 여당이 당정합의로 전격 발표한 취득세 인하 발표는 왠지 석연치 않다.

 

여기서 위험한 시나리오가 하나 떠오른다. 현 정부는 아마도 고가 주택을 많이 소유한 부유층으로부터 양도세를 낮춰달라는 민원을 끊임없이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부유층을 대변하는 현 정부는 시원히 양도세를 낮춰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부자감세라는 비난여론에 시달리고 있는 정부와 여당이 또 한 차례 여론의 뭇매를 맞을 것이 뻔하다. 그리하여 지자체의 반발이 당연히 예견되는 취득세를 인하한다는 발표를 한다. 그리고 지자체나 여론이 지방세를 건들지 말고 국세인 양도세를 인하하라는 요구를 그들로부터 직접 하게 한다. 그러면 정부는 못이기는 척하며 취득세 인하 방침을 철회하고, 본래 하고 싶었던 양도세를 인하한다는 발표를 한다. 여론은 잠잠해지고 부유층은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작전은 성공한다.

 

상대를 속여서 교묘하게 공격한다는 ‘성동격서’. 4대강 정비를 한답시고 실제로는 대운하를 하고 있는 MB정부의 꼼수에 한번 속은 터라, 정부의 이번 취득세 인하 발표가 부자감세의 일환인 양도세를 낮추기 위한 교묘한 ‘성동격서’ 전략이 아닐까 하는 우려는 나만의 지나친 억측일까?   박용진 경기도의원(민·안양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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