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앞으로 다가온 4·27 재보선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성남 분당을이다. 전·현직 여야 당 대표간 맞대결이자 정치 인생을 건 한판 승부로,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세몰이’와 ‘나홀로’, ‘당대 당’, ‘인물론’ 전략 등 각기 다른 선거전을 펼치지만 한나라당 강재섭 후보와 민주당 손학규 후보는 그들만의 전략인 ‘인간미’와 ‘소통’으로 유권자를 만났다. 공식 선거운동 첫 주말 양 후보를 밀착 취재했다.
姜, 앞치마 두르고 도시락 배달
■ 만능 스포츠맨(?) 강재섭
16일 오전 7시 분당 수내동에 위치한 대진고등학교 실내체육관. 주말 아침부터 모여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동호인들 사이로 파란 점퍼와 검정 운동화 차림의 강재섭 후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쁜 일정 탓에 전날 3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면서도 강 후보는 주민들과 인사를 나눈 뒤 배드민턴 라켓을 손에 쥐었다.
초반에는 ‘헛스윙’을 거듭하며 너털웃음을 짓던 강 후보는 얼마 지나지 않아 타고난 운동신경을 과시하며 코트를 누볐다.
주민들이 “당대표에 5선까지 했다고 해서 노인으로 생각했는데 너무 젊으시다”며 감탄하자 강 후보는 “며칠 전에는 탄천에서 농구를 했는데 공을 두번 던져 두번 모두 골대에 넣었다. 좋은 징조”라고 말했다.
이어 강 후보는 “중학교 때는 배구선수로 활동했고 당구도 한때는 400까지 쳤었다”면서 “모든 운동의 공통점은 힘으로 억지로 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선거운동도 마찬가지”라며 미소지었다.
■ “전에 쓰던 앞치마로 주세요”
강 후보는 이날 오전 정자동 한솔종합복지관에 들렀다. 이 곳은 임태희 의원 시절부터 한나라당 지역의원들이 매달 한두번씩 방문해 강 후보에게는 익숙한 곳이다.
“할머니, 저 왔습니다”라며 강 후보가 들어서자 노인들이 “악수 한번 하자”며 반갑게 맞았다.
강 후보는 도시락 포장을 위해 어깨띠를 풀고 소매를 걷어붙였다. 복지관에서 분홍색 앞치마를 건네자 강 후보는 곧 “전에 쓰던 거 있잖아요, 하얀 거”라고 자신이 평소에 쓰던 앞치마를 찾았다.
곧 이어 포장된 도시락을 들고 장애인과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 배달에 나선 강 후보는 ‘분당 토박이’임을 강조하듯 “이 단지에는 1천420세대가 살고 있는데 20년 전에는 젊은이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노인들이 대부분”이라고 지역 사정을 줄줄 읊었다.
이어 그는 “그런데도 이곳에는 테니스장만 3개고 놀이터만 4개”라며 “놀이터 자리에 요양동을 만드는 등 노인과 장애인에 맞는 환경을 다시 만들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듣고 있던 노인들은 “잘한다, 여기 놀이터 있으면 뭐해”라며 맞장구쳤다.
■ 기자들 따돌리고 찾은 곳은?
앞서가던 강 후보의 차가 예정된 경로를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기자들은 물론이고 기자들과 함께 이동하던 캠프 관계자들도 당황했다.
강 후보는 공식 일정에는 없었던 백현 초등학교를 기습 방문했다. 아이들을 마중나온 학부모들을 만나기 위한 것.
강 후보는 “전날 초등학교에 갔는데 취재진과 관계자들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더라”며 “분당사람들은 시끄러운 것을 싫어한다. 더구나 1년짜리 선거인데 조용히 치러야지”라며 양해를 구했다.
이어 “나는 주민 없이 외지 사람만 나와서 떠들석하게 돕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이번 선거에서 길고 시끄러운 유세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이 분위기 그대로 이어 갈 것”
강 후보는 이날 오후 대형마트 주변에서 유권자들을 만나 지지를 호소했다.
멀리 지나가는 주민들에게는 뛰어가면서까지 다가가 머리숙여 인사하는 적극성에 주민들은 “좋은 일이 생기시길 바란다”며 화답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오늘 더 반응이 좋다”며 웃음짓던 강 후보는 “시간대별로 유권자들의 반응이 확실히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출근시간에 인사하는 게 제일 힘들다. 바쁘게 왔다갔다 하면 나를 싫어하나 걱정도 된다”며 “하지만 퇴근시간에는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분위기가 좋아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지지율이 그대로 갈 것 같다.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구예리기자 yell@ekgib.com
孫, 불곡산 오르며 친화력 과시
■ 손학규 불곡산 정기받다
16일 오전 8시 분당 정자동 불곡산 입구. 허름한 바람막이 재킷과 백팩을 짊어지고 조금은 촌스러운 모자를 눌러 쓴, 영락없는 아저씨 등산객으로 변신한 손학규 후보가 나타났다.
불곡산은 완만한 능선으로 이뤄진 해발 344m의 비교적 낮은 산으로, 분당 주민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소중한 장소.
산행에 나선 손 후보는 만나는 주민들에게 ‘손학규입니다. 좋은 산행되세요’라는 짧은 인사말만 던졌다. 정상에 오르는 동안 단 한번도 ‘도와달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정상에 오른 뒤 그를 알아본 젊은 팬들이 먼저 환호성을 질렀다. 손학규의 팬이라며 기념 촬영을 요구하기도 하고, 직접 싸온 과일과 간식거리를 건네며 ‘꼭 당선되세요’라는 기분 좋은 메시지도 전했다.
하산 길에는 산을 오르는 한사람, 한사람과 악수를 나누기도 하고 산악 자전거를 탄 등산객과는 하이파이브를 하는 등 손 후보의 트레이드 마크인 친화력을 보여줬다.
또 이날 방과후 일정으로 등산에 나선 수내중학교 학생들과는 일일이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기도 했다.
나홀로 유세에 대해 손 후보는 “혼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지역 주민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며 “주민들과 땀 흘리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고 즐겁다”면서 불곡산을 찾은 이유를 설명했다.
■ 친화력의 달인-“그래도 비난하는 사람이 많이 줄어든 것 같네요”
불곡산 하산 과정에서 산을 오르던 노부부가 손 후보를 알아보고 “한나라당에 있다가 민주당으로 가고, 다음은 강기갑(민주노동당 의원)에게 갈 거냐. 천안함 사태가 한나라당이 지은 얘기냐. 우리를 북으로 보낼 거냐”며 항의했다.
이에 손 후보는 노부부를 따라 올라가면서 “인사 좀 드리겠습니다. 손학규입니다”라며 끝까지 악수를 청하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손 후보는 “전보다 비난하는 분들이 많이 줄었다”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호의적으로 변한 사람이 많다는 것 아닌가”라고 웃어 넘겼다.
■ 당색 버린 손학규 -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전 산행을 마친 손 후보는 이날 오후 분당의 대표적 휴식처인 율동·탄천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수행원이라고 해봐야 흰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예쁘게 차려 입은 서너명의 자원봉사자가 전부.
공원에서 평상복 차림에 어깨띠도 없이 곳곳을 누비는 손 후보는 보궐선거 후보자가 아닌 나들이객이자 가정적인 아버지, 할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였다.
부모와 함께 나온 아이들과 공 던지기를 해주는가 하면 간식을 나눠 먹는 등 산책을 즐기면서 주민들과 동화되는 모습이었다.
아이들도 “TV에 나온 아저씨”라며 사진찍기에 열을 올렸다. 민주당을 대표하는 초록색과 어깨띠를 버린 손 후보의 모습에 일부 노인들은 “경기도지사네. 손학규네. 꼭 찍어줄게”라는 말을 연방 건넸다.
■ “다음 일정이 급한데”
이날 저녁 정자동 일대 상가를 방문한 손 후보는 만나는 사람마다 아이 컨택트를 겸비한 두손 악수를 잊지 않았다. 2~3명의 아줌마 부대가 나타나면 “이쁜 새댁들이 장보러 왔나보네”라며 낯 간지러운 말도 서슴지 않았다. 듣는 이들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인사를 했는데도 그냥 지나쳐 가는 사람이 있으면 횡단보도 중간까지 따라갔다. 오히려 당혹스러워하는 건 손 후보가 아닌 시민들. 이에 손 후보 캠프 관계자들은 “인사를 건네는 모든 사람과 악수를 하고 스쳐 지나는 사람까지 쫓아다니니까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을 늘어 놓기도 했다.
김규태기자 kkt@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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