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만형 안산 제일컨트리클럽 운영위원장
미국 아이다호 북쪽에 위치한 쿠르달렌 리조트에는 세계 최초로 호수 중간 물위에 섬 그린이 있어 퍼팅을 하기 위해서는 전용보트를 타야 한다. 1993년 설립된 유럽에 단 하나뿐인 프랑스 라제니 누드 골프장은 옷 입은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다.
또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활화산인 메라파이산 옆에 위치한 메라파이 코스는 홀 옆에 용암이 흘러나오고 언제 폭발할지 아무도 모른다. 호주 남부 누라보 링크는 세계에서 제일 긴 코스 1천356km로 라운드를 마치기 위해서는 최소 4일이 걸린다고 한다. 이처럼 세계 각지에는 특이한 골프장이 많다.
한국에도 이 못지 않게 특이한 골프장이 있다. 바로 안산시 부곡동에 위치한 제일컨트리클럽(이하 제일 CC)이다.
회원관리가 깐깐하기로 유명한 제일CC에서는 민소매 옷을 입고 입장할 수 없다. 또 퍼팅때문에 나무를 자르거나 꽃·화초를 뽑는 일도 상상할 수 없다.
자선골프대회를 열어 마련된 수익금을 심장병어린이 수술비로 지원하고 주민들을 위해 벚꽃 축제를 개최하는 날은 아예 골프장 문을 닫는다. 골프장 휴장으로 인해 하루 수억원의 손실이 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주민들을 초청하는 제일CC에는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특이한 제일CC만의 경영철학이 궁금해 유만형(71·(주)달산케미칼 회장) 제일CC 운영위원장을 26일 오전 제일CC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악연에서 인연으로…제일CC 산증인
제일CC의 산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유만형 위원장은 선대부터 420년째 안산에 터를 잡고 살아온 ‘안산 토박이’다. 유망한 중소기업 사장인 그가 골프장과는 어떤 관계인지가 제일 궁금했다.
지난 1986년 문을 연 제일CC는 ‘재일동포들의 친목과 화합을 위한 대화의 광장이자 재일동포 후세들의 고향 찾아주기 운동’의 일환으로 1982년 이 사업의 설립취지와 목적에 찬동한 재일동포 유지 72명이 출자해 설립했다.
“그 당시 재일동포의 경우 재력은 있었지만 한국 사회에서 정체성이 애매모호했다고 해요. 돈이 많다는 점을 악용한 사기꾼들이 많은 재일동포들을 괴롭혔지. 재일동포들은 한국 사회를 위해 힘을 모으고 싶어했는데 이러한 재일동포들의 희망이 결실로 맺어진 것이 바로 지금의 제일CC입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청와대 건설담당 비서관이 직접 헬기를 타고 수도권 지역을 돌며 지금의 부지를 최종 선정했다고 한다.
골프장 건설이 본격화 되자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심해졌다. 유만형 위원장도 그 당시 개발로 땅을 강제수용 당해야 하는 주민 중 한 명이었다.
“최종 부지 결정 후 논 4천500원, 밭은 5천원에 보상받았죠. 강제수용으로 지역 주민들의 마음 고생이 심했는데 나 또한 마찬가지였어.”
금쪽같던 땅을 강제수용당하면서 제일CC와 맺은 인연은 기묘하게도 25년째 이어지고 있다.
골프장측은 원주민을 쫓아내는 막무가내식 개발이 아닌 지역사회와 눈높이를 맞춘 골프장을 만들기 위해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골프장 건설에 있어 전문가의 손길을 요하는 작업을 제외하곤 부곡동 주민들을 우선적으로 채용했어요. 제일CC에는 잡초 뽑는 일부터 시작해 골프장 곳곳에 주민들의 눈물과 땀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데 당시 골프장에서 잡초를 뽑고 했던 주민들의 자녀들이 장성해 현재 정식 직원으로 일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자칫 악연으로 끝났을 법한 골프장과는 인연이 되어 그는 지금도 골프장 안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다.
‘깐깐한’ 운영위원회 위원장…직원들에겐 ‘최고 인기남’
제일CC 운영위원회는 재일동포 2명과 내국인 회원 8명 등 10명으로 구성됐다.
골프장 운영에 있어 개선사항 등을 경영진측에 건의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토록 하는 ‘멘토’ 역할이 주된 임무다. 유 위원장은 직원 140여명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골프장 회원 1천 여명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그야말로 전천후 활동을 벌이고 있다.
골프장 입구 경비원부터 클럽하우스 직원들, 청소 아주머니, 캐디에게 “아침 식사하셨어요?”라고 인사하는 유 위원장은 골프장에서 인기가 최고다. 직원들의 표정, 행동 하나 하나 허투루 보는 법이 없다. 하지만 매너가 좋지 않은 회원들이나 원칙을 벗어난 경우에는 예외없이 일침을 가한다.
최근에는 필드에서 비신사적인 행동을 한 회원을 퇴출시켰다.
“일부 회원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약자의 입장에서 서서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원칙에서 내린 결정이었죠. 제일CC의 주인은 바로 직원이죠. 주인을 보호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유 위원장은 재일동포 경영진들, 운영위원회 위원들과 함께 제일CC가 지역 사회를 위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한다.
57만평 규모에 27홀의 제일CC는 2만 그루의 벚꽃 풍광이 전국 최고를 자랑한다. 이를 회원들만 누리기에 아깝다고 생각한 골프장측은 1년에 단 하루 벚꽃축제를 개최해 지역주민들에게 전면 개방하고 있다.
벚꽃이 만발한 4월 골프장은 성수기다. 하루 문을 닫으면 4억~5억원 상당의 손해를 보지만 제일CC는 천혜의 자연경관을 주인인 주민들이 즐길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제일CC 벚꽃축제는 도내 최고의 꽃축제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또 제일CC는 심장병어린이를 위한 자선골프대회를 개최해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심장병 전문 의료시설인 동의성 단원병원에 성금을 기탁하고 있다.
“재일동포 경영진들은 골프장에서 얻은 수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하자는 의지가 뚜렷합니다. 이러한 취지를 반영해 운영위원들과 직원들은 다양한 지역공헌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주민과 호흡하려 하지요. 안산 지역 주민들에게 금전적으로 도움을 줄 수 없지만 주민과 함께 하는 사업을 통해 정신적 배려를 하고 싶은 것이 제일CC의 뜻이자 저의 마음입니다.”
클럽하우스 계단에 버려진 이쑤시개를 줍고, 자신이 먹은 커피잔도 직접 치우는 유 위원장은 골프장에서 최고참이면서 경영진 입장에서는 골프장 운영에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다.
“나이도 많고 회사 일도 많아 여러차례 사의표명을 했지만 수리되지 않고 있답니다.(하하) 그 이유를 저도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체력이 되는 날까지 골프장 직원, 회원분들 그리고 안산 지역 주민들을 위해 일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죠 뭐. 제 사주에 아흔 살까지 돌아다닌다고 하던데…”
제일CC에 사연이 많은 유 위원장의 목표는 행복한 직장 만들기다.
“지구에서 인류가 살아온 수백만년 동안 인류는 다양하고 경이로운 조형물, 예를 들어 만리장성, 피라미드, 타지마할 등 을 지구상에 만들어 왔는데 골프장 또한 인류가 지구 위에 만들어 놓은 조형물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지구에는 수만개의 골프장들이 만들어져 있고, 계속해서 만들어져 갈 것인데 그 수많은 골프장은 나름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죠. 제일CC는 직원들이 행복한 골프장을 만들고 싶은 게 제일CC를 만든 재일동포들의 뜻이기도 하고 저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경영진측에서는 골프장을 운영하는데 있어 유 위원장의 존재가 귀찮을 수도 있지만 그의 ‘깐깐함’은 제일CC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PD 아들 프로 챙겨보는 CEO 유만형
유 위원장은 골프장 일 말고도 24시간이 부족한 CEO다.
그는 직장생활을 접고 마흔쯤 사업을 시작했다. 도전분야는 철도용품. 유 위원장이 운영하는 (주)달산케미칼은 인천시 남동공단 2단지 내 2천 여평의 공장에서 철도궤도용품(레일패드, 절연블럭, 침목패드, 방진체결장치 등)과 자동차용 조립가공품(시트 내외장품 등)을 주력사업으로 하고 있다.
유 위원장의 회사 경영철학은 골프장과 일맥상통한다. ‘사원이 주인인 회사를 만들자’는 것.
“회사는 우리 직원들 것이지 제 소유가 아닙니다. 전문지식 없는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경영방식은 바뀌어야 해요. 회사 마당 눈 한번 치우지 않는 이들에게 회사를 맡기면 회사는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회사는 전문가가 경영해야 한다는 유 위원장은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 받으라고 강요하지도, 권유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아들은 현재 SBS 예능 PD로 활약하고 있다.
강현숙기자 mom1209@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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