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기업 세계를 사로잡다] 선일금고제작

금고는 가구…名品 디자인 입고 해외시장 뚫은 名品 금고

네모난 강철로 만들어 투박하게 사무실이나 집안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금고가 화려한 가구로 재탄생되고 있다. 화려한 자주색 속에 감춰진 꽃무늬,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같은 명화로 장식된 외관. 와인냉장고나 공기청정기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디자인을 입히면서다. 금고인지 와인냉장고인지 겉으로는 구분하기도 곤란하다. 칼라풀한 디자인이 세계 최초로 터치버튼을 장착한 인테리어 금고 ‘루셀’은 금고시장에 큰 변화를 몰고 있다.

■ 우리 손으로 만든 금고를 지키다

선일금고제작의 시작은 작고한 ‘금고박사’로 불렸던 김 대표의 남편인 고 김용호 회장이 창업을 결심한 수십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전쟁 고아 출신인 김 회장은 무일푼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디볼드 금고회사에서 일하면서 금고를 접하게 됐다. 당시 김 회장은 영업사원으로 전세계 50개국을 돌며 금고기술을 습득하게 됐다.

 

이후 김 회장은 귀국, 금고 개발에 온 힘을 기울였다. 당시 국내의 모든 금고는 구마이, 다케우치 등 일본 제품의 수입에 의존했다. 하지만 10년 넘은 경험을 바탕으로 선일금고제작을 창업한 김 회장은 국내 최초로 내화금고 개발에 성공했으며 내화금고 공개 시험이라는 파격적인 결정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직접 금고를 불태우는 이벤트로 제품의 우수성을 보여준 것이다.

 

이후 지속적인 기술개발을 통해 국내 최초로 전자식 잠금장치인 ‘디지털록 금고’를 개발하면서 금고 수입국에서 금고 수출국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특히 김 회장은 금고의 3대 인증인 UL(미국), SP(스웨덴), GOST(러시아)까지 모두 획득하는데 성공, 금고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지난 2004년 교통사고로 김 회장이 사망하면서 선일금고제작은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됐다.

 

이전에도 위기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1980년 처음 만든 디지털 금고를 수출했지만 내장칩에 이상이 생겨 문이 열리지 않는 사고가 발생했고, 95년에는 수출중 태평양을 건너던 선박에서 고열과 습기로 녹슬어 수천대가 회수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당시 돌아온 금고가 얼마나 많았던지 공장을 둘러 담을 쌓을 정도였다. 어음을 잘못 빌려줬다 회사가 부도직전에 몰리는 상황도 있었다.

 

하지만 남편의 부재는 위기를 헤쳐갈 동반자가 없음을 뜻했다. 직원들이 하나둘 회사를 떠나고 거래처마저 끊어지는 광경을 눈 앞에서 지켜볼 뿐 이었다. 더욱이 엔지니어가 아니었던 김영숙 대표는 기술 분야에 대한 지식을 거의 갖추지 못해 막막하기만 했다.

 

전자식 잠금장치 ‘디지털록 금고’ 국내 첫 개발업체 명성

 

갑작스런 남편 교통사고로 대표이사 맡은 직후 최대 위기

 

개발현장 지키는 큰 딸, 영업현장에선 작은 딸 ‘종횡무진’

 

클림트 名畵 ‘키스’ 신개념 디자인 ‘루셀’ 금고시장 새 바람

 

방범시스템 묶은 종합보안회사 도전… 세계 일류기업 속력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떨려 일손을 잡을 수 없다는 김 대표는 “사업을 그만해야 할지 말지에 대한 결정도 할 수 없었다”면서 “하지만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특히 남편의 선견지명도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두명의 딸 중 큰 딸에게는 금고 제작을, 작은 딸에게는 마케팅을 가르쳐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큰 힘이 돼주었다. 특히 대학에서 제어계측공학을 전공한 큰 딸 김은영 상무는 김 회장으로부터 3개월 동안 설계·용접·내화재 충전·판매까지 혼자할 수 있도록 기술을 배운 경험은 참으로 소중했다고 강조했다.

 

이후 김 대표는 독하게 회사를 살려나갔다. 대표이사를 맡은 후 휴일도 없이 매일 7시에 출근해 생산현장부터 챙겼고 직원들과 동고동락하며 위기를 헤쳐나갔다.

 

■ 기술력이 숨은 경쟁력

선일금고의 우수함은 지난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세간에 희자되기 시작했다.

 

천년고찰인 낙산사가 화재로 무너져내리면서 동종까지 녹아내렸지만 금고 안에 넣어뒀던 사찰문서 등 보물은 무사했다. 또 파주의 한국유통에서도 화재가 일어나 3시간 동안 건물전체가 무너져 내리고 서랍속 동전마저 녹아 없어졌으나 선일금고에 보관 중이던 현금 4천만원과 보험증서는 색조차 바래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국내 최초로 다이얼 방식에서 디지털 잠금장치 개발에 성공한 선일금고는 아시아기업으로서는 최초로 1999년 미국 UL(Underwriters Laboratories Inc)내화 충격실험을 통과했다. 미국 UL의 내화·충격시험에 합격하려면 섭씨 927도에서 일정시간 내부 온도를 섭씨 170도 이하로 유지할 수 있어야 하며, 그 후 10m 높이에서 떨어뜨리고 다시 가열해 견뎌내는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또 아시아 최초로 2007년 고기능성 방도(도난방지)금고인 ‘유로 그레이드Ⅰ’ 인증을 획득했으며 2008년에는 세계 최초로 터치버튼을 장착한 인테리어 내화금고 ‘루셀’(LuCell)을 출시했다.

 

30년간 국내 최초란 수식어에 아시아,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까지 덧붙인 셈이다.

 

김 대표는 “최고의 금고를 만들겠다”는 일념 속에 끊임없는 기술개발로 어려움을 극복해냈다“고 자평했다.

 

이런 이유로 판매 중인 금고의 80% 이상은 선일금고제작이 선도했던 전자식 잠금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선·후발 업체간 단가경쟁이 치열한 금고시장에서 국내 업체는 물론 세계 시장에서 버티기 위해선 기술 개발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다는 김 대표는 “다른 회사에서 산업스파이를 보내 제작 현장을 훔쳐보려 한 적도 있다”면서 우수한 기술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 여성 CEO의 섬세한 감각에서 새로 태어나다

회사 입구에 들어서면 한편에 자주색, 보라색 등 갖가지 색깔을 입힌 금고들이 놓여져 있다. ‘금고는 가구’라는 아이디어 속에 지난 2008년 30억원의 개발비를 들여 만들어낸 신개념 디자인 금고 ‘루셀’이다.

 

투박한 금고를 아름다운 장식품으로 탈바꿈시킨 신선한 시도였고 제품이 출시되자마자 시장의 호응은 뜨거웠다. ‘클림트의 키스’같은 명화나 장미, 보석 등의 무늬로 장식된 ‘루셀’ 모습은 뭉특하고 잿빛의 우충충하다는 기존의 금고 이미지를 사라지게 한 이유에서다.

 

또 한국색채학회 디자인진흥원장상을 획득하며 제품의 디자인에 대한 우수한 평가도 받았다.

 

서울의 유명 백화점 특판행사에서 하루만에 40대를 판매하며 주목받기 시작한 뒤 금고제품이 강남의 백화점까지 입점하는 기회까지 잡게 됐다. 내 인생의 보석상자라는 컨셉으로 값비싼 보석이나 돈뿐 만이 아니라 일기장이나 사진 등 개인적인 추억거리도 보관하는 가정용 소품 이미지도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면서 금고가 아닌 장식품으로서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다.

 

여기에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터치 버튼은 기능성까지 갖추면서 국내 뿐 아니라 해외시장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김 대표는 “귀중품을 보관하는 금고도 이제는 IT산업에 접목해 첨단화되고 사용자가 쓰기 편해야 한다“면서 “이제 금고는 비밀스런 장소에 파묻힌 골동품이 아니라 집안 어디에나 잘 어울리는 가구가 돼야 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 변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이런 이유로 김 회장이 작고할 당시 97억원이었던 매출이 올해에는 3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생산 품목은 100여개, 이글세이프(Eagle Safes)란 브랜드로 수출국도 80개국에 달한다.

 

1976년 호주에 3만5천달러어치의 처녀 수출에 성공한 이후 1987년 100만불 수출탑 수상, 2006년 천만불 수출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같은 선일금고제작의 성장은 지난 2008년 세계사장 점유율 35%을 차지하며 지식경제부의 ‘일류상품 지정기업’으로 뽑히기도 했다.

 

이 과정 속에서 경기도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의 역할도 일익을 담당했다. 경기중기센터의 2009년 G-디자인개발 지원사업을 통해 소형금고의 명판디자인을 개발했고 앞선 2008년에는 해외전시회 참가 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아 해외시장 개척의 폭을 넓히기도 했다.

 

여기엔 김 대표만의 경영마인드도 자리잡고 있다.

 

김 회장의 작고 이후 혁신을 강조해온 김 대표는 지금도 ‘혁신’이라는 단어를 강조한다. 변하지 않으면 개인은 물론 조직의 미래는 없다는 경영철학에서다. 독수리가 수명이 다하면 부리를 깨고 발톱을 뽑는 고통을 견기면서 더 강한 부리와 발톱을 만들어 삶을 연장하듯 단순한 변화가 아닌 혁신이 필요하다는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혁신 속에 직원들도 성장하고 기술개발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런 이유에서 10년 넘게 김 대표는 직원들과 함께 매주 컨설팅 수업을 받아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있다. 학습이 지식경영에 밑거름이 된다는 이유라는 김 대표는 “작지만 위기에 대처할 능력을 갖춰야 급변하는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006년에 중국 장쑤성 쑤치안에 공장도 세워 중국 시장 공략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김 대표는 지금 기술개발은 위한 연구소 건립까지 계획 중이다.

 

김 대표는 “몇 백년의 역사를 가진 세계적인 큰 금고회사들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디자인과 구조를 갖춘 금고를 선보일 것”이라며 “앞으로 금고와 연계된 보안시장이 발달할 것으로 보고 방범시스템을 묶은 종합보안회사로 성장시키는 꿈을 꾸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동식기자 dsk@ekgib.com

 

사진=하태황기자 hath@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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