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인생 40년, 김영애의 푸념 “내가 연기를 그것밖에 못해”

MBC 수목드라마 ‘로열패밀리’의 공순호 회장역 김영애

“내가 연기를 그것 밖에 못해...”

 

갓 작품을 마친 초로의 배우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아쉬움 섞인 푸념이었다. 연기인생 40년, 젊은 시절에는 청춘드라마의 주연을 휩쓸었고 나이 들어서도 “저거 치워”라는 서슬 푸른 한마디로 시청자들을 긴장시켰던 이 배우의 욕심은 어디까지일까.

 

MBC 수목드라마 ‘로열패밀리’의 공순호 회장 역으로 열연한 배우 김영애(60)를 만났다. 성급한 여름이 찾아온 5월의 어느날, 서울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해사한 미소를 머금고 딸같은 나이의 젊은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하나하나 성심성의껏 답했다.

 

◈가장 인상깊은 대사 “정가원에서 이 공순호가 법이다”

 

▲ 작품이 얼마 전에 끝났습니다. 좀 쉬셨나요?

-아직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아서 기운이 안 나요. 그동안 밤을 많이 새웠더니 무척 힘들어요. 앞으로 이렇게 힘든 역할을 맡게 되면 개런티를 더 받아야 할 것 같아요. (웃음) 한창 바쁠 때는 공회장이 제발 빨리 쓰러져서 분량 좀 줄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니까요. 그래도 결국 할 것 다하고 18회에 쓰러지더군요. (웃음)

 

▲ 그렇게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까요? ‘로열패밀리’의 공순호 회장 역에 대한 칭송이 자자합니다.

-‘로열패밀리’ 하면서 주변에 친한 사람들한테 그랬어요. 신인 배우 하나 났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신인배우 쓸만했어?”라고 묻기도 했죠. 드라마는 KBS ‘황진이’ 이후 5년만인데 앞으로 제 대표작 중 하나로 꼽을만한 작품이라 생각해요. (그는 첫 주연작인 ‘민비’를 비롯 ‘야상곡’, ‘형제의 강’, ‘황진이’ 등을 대표작으로 꼽았다)

 

▲ 젊은 층에서는 공회장의 “저거 치워”라는 대사가 회자됐는데요.

-나는 개인적으로 “이 정가원에서는 공순호가 법이다”라는 대사가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근사하지 않나요?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대단한 것 같아요.

 

▲ 선생님이 연기한 ‘공순호’란 인물은 어떤 사람인가요?

-공순호는 가진 게 많지만 그걸 지키기 위한 안목과 노력도 남다른 사람입니다. 아내로서, 여자로서 사랑받지 못한 이 여자의 배경이 무엇인가를 성취하고자 집중하게 만든 것이지요. 그렇지만 누구보다 외로운 사람이었죠. 저는 이 여자가 악역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그렇다 보니 어렵지 않게 물 흐르듯 연기할 수 있었죠.

 

◈연기를 저것 밖에 못해...완벽주의에 아쉬움 남아

▲‘로열패밀리’ 역시 촬영 스케줄이 빡빡하기로는 둘째가라 할 정도였는데요.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대사 외울 시간이 없었어요. 조금만 여유가 있었으면 좀 더 잘하지 않았을까요. 바쁜 촬영 스케줄은 아쉽지만 현실이니까 어쩔 수 없죠. 어쨌든 방송은 나가야 하고, 내 얼굴이 나가는 것이잖아요. 여건이 열악하다고 “연기를 저렇게 밖에 못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요. 최선을 다해야 하니 죽기살기로 연습해야죠.

 

▲혹시 아쉬움이 남는 장면이 있나요?

-많죠. 보다 보면 정말 ‘연기를 저렇게 밖에 못하나’라는 말이 나올 정도죠. 2년 전 영화 ‘애자’를 찍을 때도 그랬고. “60년이나 살았으면서 저 얼굴밖에 안돼...”라는 푸념이 들곤 하죠.

 

▲선생님같은 대배우가 그런 생각을 하다니, 의외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내가 스스로에 대한 불만이 많다는 것에 놀라곤 해요. 하지만 오래 했다고 다 잘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게 이렇게 밖에 안되나...라는 생각을 하며 절망을 느낄 때가 많아요. 난 늘 최고이고 싶고, 이 역할은 김영애만이 할 수 있고 김영애보다 잘할 사람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요. 사람들의 시선도 시선이지만 내 눈높이를 맞춰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네요.

 

▲실제 경영을 해본 경험이 연기에 도움이 됐나요?

-그럼요. 제 사업체 직원이 70명입니다. 그러니 공순호 회장은 7만명 쯤 거느리겠구나라고 생각하면 어려울 것 없어요. 한 가정을 경영하면 그게 도시가 되고 국가를 이루는 것과 같은 이치죠. 사실 사업할 때 참 많이 힘들었는데 그 시간들이 나를 어른스럽게 해줬어요. 전에는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지만 70명의 생계를 책임지고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책임감에 그만 두고 싶어도 그만 둘 수 없게 됐죠.

 

◈연기는 내 천직...연기할 때가 가장 행복

▲ 다음 작품은 언제쯤 계획하고 있습니까?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내년쯤 할 것 같습니다. 미니시리즈가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있는데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피하고 있어요. 또 이렇게 몇 달 했다가는 정말 할머니가 될 것 같아요.(웃음) 개인적으로는 4-5개월쯤 쉬었다가 했으면 좋겠어요.

 

▲ 많은 역할을 연기하셨지만 혹시 앞으로 맡고 싶은 역할이 또 있다면요?

-나는 소품으로 나오는 엄마 역할은 하고 싶지 않아요. 기회가 된다면 노년의 멜로에도 도전하고 싶어요. 하지만 사랑하다 죽는 역할은 젊어서도 많이 해봤으니 이제는 ‘좋은 작품’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강해요. 좋은 사람들하고 행복하게 작업하고 싶은 게 내 꿈이에요.

 

▲ 만약 배우가 안됐다면 어떤 삶을 살 것 같으세요?

-전 연기가 천직인 것 같아요. 내가 상업학교(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재수를 하게 됐어요. 딱 1년 직장생활하다가 월급 받는 줄 알고 배우가 됐죠. 배우가 되고 5년쯤 지난 뒤 이게 나에게 맞는 일이구나라는 걸 깨달았고 20대 후반에는 제 천직인 걸 알게 됐어요. 배우가 된 건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입니다. 나는 살림도 잘 못하고 물건 볼 줄도 몰라서 재래시장도 잘 안가요. 음식도 못하고 계산에도 밝지 못하니 장사도 못하죠. 그나마 내가 가진 재주 중에서는 이게 제일 낫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연기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배우가 아니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 그림이 안 그려지네요.

 

▲ 배우 김영애의 라이벌은 누구입니까?

-글쎄요. 딱히 라이벌이라고 할만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고두심, 김자옥, 한혜숙 씨가 저랑 동갑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제각기 가진 색깔이 달라요. 고두심 씨가 가진 색깔이 제게 없듯이 저만의 색깔도 그녀에게 없지요.

 

▲ 혹시 젊은 배우들 중에 ‘제2의 김영애’라고 눈여겨 본 연기자가 있나요?

-딱히 나를 닮은 후배는 없는 것 같아요. 영화 ‘애자’를 함께 찍은 최강희가 참 열심히 하는 친구고...내가 한 10년 동안 드라마를 본 게 없는데 최근 ‘시크릿 가든’이란 드라마를 재밌게 봤어요. 거기 나오는 현빈이란 친구가 연기를 참 잘하더라고요.

 

▲ 배우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무엇입니까?

-배우는 무엇보다 연기를 잘해야 해요. 진정성을 갖고 누군가를 감동시켜야 해요. 연기를 하지만 가짜로 하면 안됩니다. 요즘 ‘나는 가수다’란 프로그램이 화제라고 하던데, 사람들이 원하는건 혼신을 다해 노래부르는 모습이죠. 연기도 가슴으로 연기할 때 사람들이 호응해주고 감동을 받아요. 모든지 대강해서 오는 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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