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원안 수정, 동남 신공항 입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이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등을 둘러싼 갈등으로 한국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다. LH를 제외하면 모두 대통령이 공약으로 제시했다가 취임 후 대국민 약속을 번복함으로서 발생한 갈등들이다. 약속을 조금이라도 신중하게 했고 약속한 바를 지켰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갈등사안들이다. 대통령은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서 약속은 국가의 대국민 약속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대통령이 약속을 저버리는 것은 국가가 국민을 위해 져야 할 공적 책임을 방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LH 본사입지를 둘러싼 지역간 갈등도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데서 생긴 것이었다. LH의 모태가 된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는 참여정부 당시 전주와 진주로 각각 이전하도록 결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2008 년 양 공사가 통합되면서 본사를 어디에 둘지가 논란이 되었지만, 현 정부는 근 3년간 이렇다 할만한 대책을 강구하지 않았다. 지역갈등의 방치는 정부가 방조한 것과 다름 없었다.
국책사업 갈등에 대한민국 몸살
돌이켜 보면, 국책사업을 둘러싼 갈등은 어제 오늘의 것이 아니다. 최근의 원자력 발전소 신규지정, 새만금 간척지 조성, 경부고속철도 경주 역사 설치 및 사패산 터널 공사, 호남고속철 분기역사 설치, 부안 원전 수거물 시설 설치, 사패산 터널 공사, 영종도 신공항 건설, 동강댐 건설 등은 모두 깊은 앙금을 남기는 사회적 갈등을 겪었거나 겪고 있다. 참여정부는 갈등관리기본법을 제정해 갈등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다. 그 일환으로 정부 부처별로 갈등심의위원회가 설치·운영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이 모든 노력은 원점으로 돌아갔고, 대통령 스스로가 대국민 약속을 버림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불러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국책사업을 둘러싸고 반복되는 갈등을 근원적으로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책사업관리법’이 조속히 제정되어야 한다. 국책사업의 요건을 제대로 갖추도록 하고, 또한 제대로 갖추었을 때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마련하자는 게 국책사업관리법 제정의 취지다. 선거공약에 의한 것이든, 정권의 정치적 목적에 의한 것이든, 어떤 경우라도 막대한 국민혈세가 투여될 국책사업으로 지위를 가지고 추진하기 위해선 그에 준하는 요건을 국민적 논의와 검증절차를 통해 갖추도록 해야 한다. 특히 정치적인 계산과 개입을 배제하기 위해 투명하고 엄격한 타당성(경제성 포함) 검토를 거치되, 그 과정과 결과는 개방 해 주권자인 국민들이 충분히 납득하고 승인하는 절차가 반드시 따라가도록 해야 한다. 국책사업으로서 선정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는 국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안정적 관리 전담할 기구 필요
국책사업의 예산 규모, 추진기간, 추진절차, 사업내용의 변경 등은 모두 예측 가능하게 통제하고 해결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법에 정확하게 적시되어야 한다. 가령, 예산의 경우, 일정한 범위 내에서 추진하다가 증감이 필요할 경우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국회에서 심의를 통해 합의제로 조정하는 예산상한제가 도입될 필요가 있다. 추진과정의 이해 당사자간 갈등은 합의회의나 배심원제와 같은 참여적 의사결정을 제도화해 예방하고 조정하도록 해야 한다. 일상적 갈등조정은 갈등조정관을 두어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추진 중인 사업이라도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국회공청회와 같은 공론화를 통해 수정하거나 퇴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정치적 개입은 엄격하게 차단되어야 한다. 국책사업의 추진성과는 국회에 정기적으로 보고해 국민들이 소상히 알도록 해야 한다. 국책사업의 안정적 관리를 전담할 기구로 가칭 ‘국책사업관리처’가 설치될 필요가 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