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선율에 취하는 사회

모 방송국에서 일요일에 방영하는 프로그램 중 ‘나는 가수다’가 있다. 이 프로그램을 처음 기획한 PD는 심사기준 문제로 안타깝게 중도 탈락했지만, 이 프로그램의 인기는 고공행진하고 있다. 왜 그럴까? 각종 블로그에서 그 이유를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고 있다. 그중 비교적 많은 이가 공감하는 내용은 아이돌 스타들의 노래에 식상한 사람들이 진짜 노래를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진짜 노래라고 하면 조금 어폐가 있을 수 있지만 만들어진 노래, 보여지는 노래가 아니라 가슴으로 감동받을 수 있는 노래를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데, ‘나 가수다’에 출연한 가수들이 이러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경연에서 어느 가수가 탈락할 것인지 가슴 졸이며 지켜보고 있다. 가수들은 청중 평가단의 수준에 감동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섭다고 한다. 가수들이 노래할 때 그 노래에 전율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메모까지 하면서 장단점을 분석할 정도로 청중 평가단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한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에서는 한류 아이돌 스타들의 공연 횟수를 늘려달라는 행복한 청원이 뉴스를 달구고 있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돌 스타들의 노래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욕구가 발현되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사람들, 감동받는 노래 듣고 싶어해

 

이 글을 쓰기 직전 휴대폰에 문자가 들어왔다. “오늘 번개 및 앙상블 단체 연습 있습니다. 이번 주말 ‘레스피아 야외공연’ 건에 대해 의논하고자 합니다.” 수년 전부터 색소폰에 푹 빠져 있다. 색소폰을 배우는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수지’만해도 색소폰을 배우거나 연주할 수 있는 곳이 수년 전만해도 한 두 곳에 불과했는데 서너 배 증가했다. 일을 마친 후 하나 둘 동호회 음악실에 몰려들어 저마다 악기를 들고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보는 그 자체가 행복하다.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색소폰의 선율에 취하는 사람, 드럼의 리듬감에 취하는 사람, ‘세시붕 친구’ 방송 이후 기타를 배우는 사람들의 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색소폰을 배운지 1년 정도 지났을 무렵 미국 출장을 간 적이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던 비행기 안에서 무료함을 해소할 마음으로 종이에 오선지를 긋고 생전 처음 어설프지만 2개의 곡을 썼다. 그 곡을 선생님께 보여드렸더니 가능성이 있다고 칭찬해주셨다. 매일 새벽마다 머릿속을 스치는 느낌을 곡으로 표현하기 시작했고 그해 연말 즈음 자작곡의 수가 85곡에 이르렀다. 금년 초, 우연히 지방 시향에서 오케스트라 편곡을 하던 선생님께 자작곡을 보내게 됐다. 그분의 첫 소감인즉, “작곡을 배운 사람은 이렇게 곡을 만들지 않지요. 그렇지만 풍부한 상상력과 표현은 칭찬할 만합니다. 제가 곡을 다듬어보고 싶은데 어떠세요?” 이런 뜻밖의 답을 받았다.

 

아마추어 뮤지션 많아져야

 

이렇게 숨을 쉬게 된 곡들을 지방 시향 출신 뮤지션들이 정식으로 연주하기 위해 매주 목요일마다 모여서 연습하고 있으니, 어려서부터 음표만 보면 자지러지던 필자로서는 실로 꿈같은 일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노래에 취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 노래에 취해 함박웃음을 머금을 수 있는 사람이 가득한 사회는 행복한 사회다. 리스만이 ‘고독한 군중’을 설파한 1950년대보다 반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고독해 한다. 음악의 선율에 취해 행복해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 고독의 양이 조금은 반감되지 않을까 싶다. 악기를 배우고 싶은데 주저하는 분이 있다면, 오늘 용기를 내어 음악실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어떨지? 연주하다 틀려도 용서받을 수 있는 행복한 아마추어 뮤지션이 많아지는 세상, 그런 세상을 꿈꿔 본다.   한범수  한국관광학회 회장  경기대 관광개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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