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한 흙의 감촉이 산사 길에 탄력을 준다. 길가에 명상의 길이란 팻말이 매달렸지만 길손이 너무 많아 의미를 잃고 있다. 그러나 이 절의 입구는 사천왕상 같은 550살 은행나무가 두 그루나 버티고 있어 나그네 야코를 죽이고 있다.
대웅전에서 바라보는 두물머리 풍경은 시간마저 공회전할 뿐이다. 초의와 추사와 다산이 차 마시며 진리에 투신 하던 곳, 예술과 학문과 다도의 풍류가 시공의 울타리 안에서 은은히 향기를 낸다. 배나온 세속인들이 삼정헌 창가에서 어색한 무드에 젖어 차 마시며 망중한을 즐길 때, 맞장 뜨고 싶은 근육질의 은행나무가 맘에 들어 앞뒤좌우로 훑어보며 마른오징어처럼 찢고 깨물고 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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