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먼 남쪽으로 떠났다. 나지막한 한옥이 이어진 길가에 장미꽃이 흐드러지게 핀 유월이다. 푸른 호수가 있는 벚나무 길 따라 노송들이 허리 굽혀 경배하는 운문사에 다다랐다. 범종각을 들어서니 묵은 구렁이 같은 처진소나무가 몸을 휘감고 지친 나그네를 훑어보는 통에, 부처님 전에 무릎 꿇고 모든 죄와 탐욕까지 자백하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본존불이 두 손을 모으고 있어 주객이 전도된 듯 야릇한 기분이다. 일 년에 한번 개방한다는 불이문 안쪽을 보고 싶어 뒤로 돌아가니 명품 쌍둥이 은행나무가 여승들의 비호아래 의기양양하다. 북대암 들려 하산 길에 산채 비빔밥을 먹었다. 아삭아삭한 청도미나리가 죽여주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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