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경쟁사회 갈구하는 대중의 대리만족 작용
대중문화평론가들은 사회학적 연구대상으로 떠오른 이 같은 현상을 두고 우리 사회가 경쟁, 특히 공정한 룰에 따른 무한 경쟁을 공론화하는 데에 원초적 쾌감을 느낀다는 방증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 방송사·참여자·시청자의 삼각편대(三角編隊) = 오디션 프로그램은 10년 전에 시작될 당시에는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이유는 ‘슈퍼스타K 2’처럼 ‘스토리파워를 통한 감동’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직 실력만으로 승부를 가리던 무미건조한 ‘대결’은 진한 스토리를 담은 ‘인간극장’식의 ‘오디션 드라마’만큼 열풍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대중문화평론가들은 ‘슈퍼스타K 2’의 허각과 장재인, ‘위대한 탄생’의 백청강, ‘나는 가수다’의 임재범처럼 ‘경쟁’은 유지하되, 그 안에 인간적 스토리를 담아냄으로써 삭막한 현대사회에 숨통을 틔워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 전과 달라진 성공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이른바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정서를 결합한 ‘디지로그’의 속성을 방송사가 간파해 시청자의 얼어붙은 심장을 녹일 수 있었던 것이다.
아프고 슬픈 스토리는 보는 이에게 약자의 승리를 꿈꾸게 하며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는 씨앗으로 작용한 셈이다. ‘슈퍼스타K 2’ 이후 방송사들이 ‘아류’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우후죽순 ‘스토리 캐기’에 몰두하고, 참여자에게 ‘스토리 생성’을 요구하며 시청자에게 ‘스토리 관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련의 도돌이표 연결고리는 식상하지만 여전히 매력있는 아이템이다.
강태규 대중음악평론가는 “방송사는 출연 연예인에게 거액 몸값을 지불하지 않아서 좋고, 참여자는 ‘정당하고 공정한’ 경쟁에 나선다는 만족감을 느끼고, 시청자는 공정 경쟁을 통한 극적 긴장감의 대리 만족을 느낀다”면서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게임을 등한시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했다. 우상과 소시민의 동일화 과정에서 오는 희열, 엿보기 심리의 대중화, 그리고 기획사의 은밀한 작업에서 방송사의 투명한 게임으로의 전환이 오디션 열풍을 일으킨 주요 배경이라는 설명도 있다.
신광영(사회학) 중앙대 교수는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은 가수 등 선호하는 직업군에서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유로 자격을 제한하는 한계를 철저히 깨부숴 우상과 일반인의 간극을 좁혀주는 묘미가 있다”며 “시청자들도 능력이 부족한 참여자들의 경연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고 자신이 마치 출연하는 듯 동일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 “나를 드러내고 너와 공감한다”=지리적으로 가까워진 빠른 접근성이 오디션 열풍에 한몫했다는 분석도 있다. 전국 어디나 KTX 등으로 한두 시간이면 갈 수 있게 된 밀착형 사회가 되면서 어떤 현상에도 쉽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 일어난 ‘남의 일’도 ‘자신의 일’로 여기기 때문에 집단적 몰입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가수들이 뜨면 쉽게 팬클럽이 형성되는 것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이미 오래전에 만들어져 온 현상”이라며 “그것이 지금 방송을 통해 드러난 것일 뿐”이라고 했다.
이 젊은 세대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거친 90년대 X세대로 부모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무리 없이 받아온, 자기주장을 과감히 드러내는 주체적 존재로 정의되기도 한다. 이들은 동호회 결성에 적극적이고, 셀카와 웹캠,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적극 알리는 쌍방향 소통에 민감한 세대들이다.
이들이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을 알리고, 이를 알아주는 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참여자와 시청자 모두 ‘관찰’ 대상이 된다. 자신을 드러내면서 남이 알아주길 바라고, 타인은 자신의 분신이 되는 과정속에 관찰 욕망은 극대화한다. 나도원 대중문화평론가는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은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갇혀 있던 자아들을 서로 소통시켰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며 “꿈과 희망, 소통을 얘기하는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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