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자본에 맞선 상인들 ‘피눈물’ 대형 유통업체들 ‘가격 파괴’ 과열 양상 사업 영역도 확대… 문 닫는 영세가게 속출
“하루하루 늘어만 가는 대출이자를 생각하면 죽을 맛입니다”
25일 오후 수원시 권선구, 작은 피자가게에서 만난 주인 김모씨(47)는 요즘 경기를 묻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김씨는 최근 인근의 대형마트에서 1만1천500원짜리 초대형피자를 팔기 시작한 후 대형마트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3년전 2억원의 대출을 받아 어렵게 피자가게를 시작했다.
당시 김씨는 피자가게 주변에 아파트 단지들이 많아 떼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고 한다.
초반에는 어느 정도 벌이가 됐다. 신장개업하고 광고 전단을 돌리자 주말에는 200판이 팔릴 정도로 신바람이 났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피자를 열심히 팔아 부자가 될 거라는 김씨의 부푼 꿈은 무참히 깨졌다.
최근 인근 롯데마트에서 ‘손큰피자’라는 타이틀로 대형 피자를 싼 가격에 판매하면서 가게는 급격히 어려워진 것.
롯데마트 천천점은 김씨가 만드는 피자의 2배 크기의 먹음직한 피자를 단돈 1만1천500원에 팔았다.
롯데마트 천천점의 ‘손큰피자’는 지난 5월 말 개점 이후 평일 70~80판, 휴일 200판 이상 판매되고 있는 반면 김씨의 피자 가게는 주말에도 평상시의 절반정도인 하루 80판 밖에 팔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대형마트에서 대형 피자를 판매하면서 유명 프랜차이즈 업소를 제외하고 주변 2~3곳의 영세 피자집은 문을 닫거나 다른지역으로 이사했다”며 “타 업종 변경도 생각했지만 이미 대형 유통업체들이 선점한 분야가 많아 자금력이 없는 영세 상인들이 할 수 있는게 없다”고 씁쓸해 했다.
SSM(기업형 수퍼마켓)의 편법 입점에 시달리는 동네 슈퍼마켓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수원 구매탄시장 인근에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지난해 중순께 개점한 데 이어 최근에는 중견유통업체인 CS유통의 슈퍼마켓 가맹점인 ‘하모니 마트’가 개점했다.
정부가 재래시장 보호를 위해 반경 500m거리내 대형마트 입점을 금지하는 법을 마련했지만 이를 교묘히 벗어난 형태가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처럼 대형마트의 영세상권 침범에 서민 경제가 죽어가고 있지만 당장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를 반영하듯 중소기업중앙회가 대형마트간 가격할인 경쟁이 중소유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응답에 나선 대형마트 인근 동네 수퍼마켓 202개 가운데 가격할인 경쟁에 따른 피해가 있다고 응답한 업체가 무려 8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의 한 수퍼마켓협동조합 관계자는 “정부가 소상공인들을 살리기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 같다”며 “이윤만 생각하는 대형 유통업체들이 상도의를 어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선호·유진상기자 dharma@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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