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명으로 본 삶의 의미 ‘인생열전’
“내가 젊고 자유로워져서 상상력의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그러나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조금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아아,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기 위해 자리에 누워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약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가족들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내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도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시켰을…”
웨스트민스터 성당 지하묘지에 있는 어느 성공회 주교의 묘비에 새겨진 글이다. ‘무(無)의 더미’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진 무덤은 어언 그대로라면 ‘아무 것도 없는 더미’라는 뜻일 것이다. 그 앞의 묘비명은 인생이 덧없다 할지라도 인간의 뜻은 절대 짧지 않다는 것을 바로 증명한다.
‘인생열전’(프리윌 刊)의 저자 박영만도 죽은 자의 회한과 깨달음, 소망을 압축해 웅변하는 묘비명에서 그 어느 가르침보다도 더 많은 지혜를 배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유토피아’를 저술한 영국의 토머스 모어는 권력과 부의 유혹에 흔들림없는 삶을 살다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고, 그의 묘비에는 ‘고결한 양심, 불멸의 영혼’이 새겨졌다.
빛나는 치적과 끝까지 품위와 권위를 잃지 않은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묘비에는 그녀의 뜻에 따라 ‘오직 한순간 동안만 나의 것이었던 그 모든 것들!’이 기록됐다.
용인 문수산 기슭에 위치한 고려 말 삼은(三隱·이성계의 조선 개국 당시 고려조의 지조를 지킨 목은 이색과 야은 길재 등 세 사람) 중 한 사람인 포은 정몽주의 묘에서도 그의 삶과 후세에도 깊은 깨달음을 주는 기록이 있다. ‘고려수문하시중정몽주지묘 불사이군(高麗守門下侍中鄭夢周之墓 不事二君)’이다. 의를 지키려다 살해되어 한 조각 비석에 절개가 깊이 새겨져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후손들을 일깨우고 있다.
발명의 왕 에디슨,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 스위스의 교육자 페스탈로치, 시대를 앞서간 개혁자 허균, 영화배우 제임스 딘 등 책에 담긴 동서양의 유명인 60명의 삶과 묘비명은 각기 다른 일침으로 독자를 자극한다.
저자는 앞서간 자들의 묘비명들을 통해 현대인에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빛나게 하지는 못할망정 욕되게 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묘비명을 가슴에 새기며 자신의 무덤 앞에 새겨질 문구를 고민하고 삶의 의욕을 북돋는 기회를 갖는 것도 좋을 듯싶다. 값 1만6천원
류설아기자 rsa119@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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