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스케치여행) 선운사 꽃무릇

요즘 심리적 외상(外傷)에 고통 받다가 선운사를 찾았다. 만세루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며 대웅전에서 굽어보는 부처님 전에 반성문을 올린다. 산문밖엔 달궈진 프라이팬의 식용유처럼 사무침에 몸부림치는 붉은 상사화(꽃무릇)가 무리지어 가슴 치고 있다. 타죽어도 좋을 그리운 사람 있어봤으면 좋겠다 싶다가 상처받기 싫어 고개 저었다. 제기랄! 기상이 수미산을 덮을 만 하다고 추사가 칭송한 긍선, 그의 백파율사비가 있는 박물관은 문이 닫혔다. 홧김에 풍천장어에 복분자주 한잔 삼키고 메밀꽃밭으로 갔다. 코스모스와 메밀꽃과 해바라기가 하얀 솜구름이 뜬 푸른 하늘아래 펼쳐졌다. 얼마 후면 국화도 피어 하늘계신 미당의 시심이 누리에 전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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