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 카페에서 시월의 마지막 밤을 보내며 도망간 세월의 배신에 못내 흥분했다. 추억은 흑백 사진 같은 것, 지금 이 순간도 정지할 수 없는 색 바랜 과거가 된다. 푸른빛을 빼앗은 시간의 무늬는 형형색색으로 주산지를 물들였다.
이곳은 각종 야생동물의 서식지다. 150년을 물속에서 살아온 천연기념물 왕 버드나무는 섬유질 같은 검고 질긴 몸을 노출하고 있다. 사과냄새 풍겨오는 과수원 길 따라 주왕산으로 향한다. 대전사 앞 은행나무가 눈부신 노란빛을 발산하고 있다.
주왕산 정상을 돌아 계곡을 내려오며 온몸을 단풍에 적셨다. 빗방울이 피아노 소리처럼 떨어졌다. 나는 음표처럼 걸어 파전냄새 물씬한 주점에 자발적으로 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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