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양은 칼럼
평양정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권력 승계는 왜 세습으로 가는 것일까,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으면 권력투쟁이 부단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김정일 사망 직후 중국이 평양에 보낸 조전 본문 중 ‘김정은 동지 영도’라는 대목이 있는 것은, 언감생심 권력을 탐내어 까부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상층구조에 대한 경고다. 김정은 삼대 세습의 뿌리가 되는 할아버지 김일성의 집권은 장구한 권력투쟁의 연속이었다.
1945년 광복 직후 국내파 공산주의 거두 현준혁의 암살을 필두로 1956년까지 허가이 등 소련파, 박헌영 등 남로당, 김두봉 등 연안파를 잇달아 숙청했다.
김일성의 갑산파가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기까진 쟁쟁한 국내외 공산주의운동 선배들을 제거하는 피비린내 나는 투쟁이 실로 파란만장했다. 김일성이 다신 그같은 권력 투쟁이 없어야 하겠다고 해서 생각해낸 것이 권력의 순혈주의다.
순혈주의 세습은 부모가 혁명가라야 자식도 혁명가가 될 수 있다는 노동당 이론이다. 이에 따라 조작된 것이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을 비롯해 조부모 를 잇는 혁명가 가계다.
김일성가계 순혈주의
김형직은 독립운동. 할아버지는 1866년 대동강에 온 미국상선 셔만호를 물리친 주동자로 묘사했다. 김일성은 사회주의 혁명의 시조로 우상화가 시작됐다.
노동당 제5차 대회는 이를 공식화 하면서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조선로동당은 김일성 동지가 창건한 김일성 동지의 당이며 영원히 김일성 동지의 당이다”라고 했다. 김일성주의의 시작인 것이다.
‘대를 이어 충성하렵니다’란 김정일의 노래가 중앙당의 지정곡으로 보급된 것은 1972년이다. 아울러 “위대한 김일성 동지께서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비서 동지를 정치사상적으로 목숨으로 옹위 보위한다”는 충성 맹서가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헌법 제2조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제국주의 침략자들을 반대하며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영광스러운 혁명 투쟁에서 이룩한 빛나는 전통을 이어받은 혁명적인 정권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노동당 규약 전문은 공화국을 이어 받았다는 ‘빛나는 전통’의 헌법상 주체를 김일성으로 못박았다. 즉 ‘조선로동당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에 의해 창건된 주체형의 맑스-레닌주의 당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1926년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공산주의적 혁명조직으로서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했으며 오랜 항일 투쟁을 통해 당 창건을 위한 조직적 사상적 기반을 마련했으며 이에 기초하여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을 창건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누가 감히 김일성 가계의 권력을 찬탈할 꿈을 꿀 수 있겠는가, 예컨대 권력층 내부의 쿠데타가 어려운 것이 40년 가까이 그들 사회에 길들여진 세습의 순혈주의를 거역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정일에 이은 김정은의 지도자 추대 또한 당연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일성의 핏줄이 권력 승계의 기준인 것은 그들이 말하는 ‘우리식 사회주의’다. 평양시내 거리에 나붙은 갖가지 구호 가운덴 이런 게 있다. ‘우리식대로 산다’는 것이다.
김일성 사망 이후 17년동안 비워둔 자리가 주석 자리다. 김일성은 아직도 주석인 것이다. 아마 국방위원장 자리 역시 비워두지 않을까 생각된다. 생전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죽어서도 영원히 국방위원장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유훈통치는 권력의 순혈주의 극치다.
앞으로의 시효는 의문
김정일 통치는 김일성의 유훈통치였다. 이젠 김정은을 가리켜 김정일의 유훈통치시대가 시작됐다고 한다. 김정은에겐 아버지 김정일 뿐만이 아닌 할아버지 김일성의 유훈까지 겹친다. 참 묘한 권력구조다. 하지만 ‘우리식대로 산다’는 사람들이다. 자기네 방식대로 보면 이상할 게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니다. 인성 본연의 사회가 아니다. 인성 거역의 필멸은, 자연법적 불멸의 법칙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의 삼대 세습은 민주주의도 아니고 공화국도 아니다. 순혈주의가 앞으로 얼마나 갈진 모르겠다. 겨울이 혹독해도 붐은 온다. 다만 북녘의 겨울은 유난히 길 뿐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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