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모뉴멘트

인간이 남긴 의미있는 흔적

그 어딘가에 그 어떤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습성 가운데 하나일지 모른다. 그래서인가. 시간에 대한 흔적은 역사로 기록되며 그 역사의 흔적 안에 제국의 영광은 물론 개인의 소소한 일상까지도 또 다른 흔적으로 퇴적되고 있다.

 

공간에 대한 흔적은 건축이나 도시를 통해 나타난다. 루소가 도시를 인류의 가래침이라는 함축적인 문장으로 표현한 것도 아마도 도시 안에 인간의 다양한 흔적들이 산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흔적을 남기는 최종 대상지는 바로 도시인 셈이다.

 

인간이 도시에 남긴 흔적 가운데 어떤 특별한 의미나 의의가 있는 것들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른바 모뉴멘트(monument)라는 것이다.

 

고대 도시에만 한정해서 보더라도, 세계의 중심을 나타내는 옴파로스 같은 상징적 장소부터 바벨탑이나 이집트의 피라미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지구랏트, 지역 신을 모시는 그리스 신전 혹은 마우솔레움 같은 개인 영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건축물이 어떤 특정한 목적과 의의를 지닌 채 도시에 남겨진 흔적들이라 볼 수 있다.

 

그것이 종교이건 신념이건 의식이건 문화이건 혹은 단순한 기념(紀念)이건 관계없이 당당히 도시 내에 나름대로의 의미체로 존재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모뉴멘트의 천국은 로마(Ancient Rome)였다. 유난히 현실적이었고 실용적이었던 로마인들은 수로 등의 도시 기반시설이나 대목욕탕 등의 공공시설 등으로 도시를 채워나갔으며 데쿠마누스(decumanus)와 카르도(cardo)라는 직교 간선도로 시스템과 전차 이동이 용이한 포장도로 등을 도시에 도입하여 단시간 내에 식민도시 등을 건설하면서 세력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로마가 대제국이 되면서 제국으로서의 위상과 제국의 수장으로서의 황제의 권위를 드높일 시설이 필요했다.

 

대전차 경기장이나 콜로세움 같은 시설들이 기존의 공공시설과 함께 도시 여기저기에 세워지기 시작했으며 황제의 이름을 딴 포룸(forum)들이 도시 요지를 점령하면서 새로운 모뉴멘트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승전을 축하하는 개선문이 화려한 조각을 뽐내며 개선 도로 입구에 당당하게 축조됐으며 도시 내 광장에는 황제의 치적을 기리는 대형 칼럼(column)이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모뉴멘트의 종류만 많아진 것이 아니었다.

 

그 규모나 디자인 또한 거대해지고 화려해졌다. 황제의 빌라(villa)나 궁전은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으며 소박한 형태의 초기 포룸 등도 점차 거대해지고 화려해져 기존의 건물을 부셔야만 지을 수 있을 정도였다. 개선문이나 칼럼 등도 더 높고 화려하게 만들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급기야 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로마는 실용적인 공공시설과 과시적인 대형 건조물 그리고 화려한 모뉴멘트로 가득 찬 이른바 기념비적인 도시가 됐다.

 

로마인은 역사상 유난히도 흔적을 남기기 좋아했던 민족이었던 셈이다. 그야말로 열심히 도시에 흔적을 만들었던 로마. 제국은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이었을까. 지금까지도 제국의 영광과 환희가 여전히 그 흔적을 드러내고 있다.

 

김영훈 대진대교수·건축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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