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 속에 만난 천연비누… 향기로운 인생 만들어요

천연비누 ‘별남아씨’로 알려진 다임 김혜경 대표

 화장품 외판·건축업 등 실패 후

취미였던 천연비누 사업화 결심

“사업에서 망해 무일푼이 된 어느날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봤는데 너무 안된 거예요.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그 순간 ‘나도 잘 살고 싶다’라는 간절한 바람과 함께 웰빙 사업으로 다시 일어나자고 결심했습니다.”

 

천연비누 쇼핑몰 ‘별님아씨’(www.soapmold.co.kr)로 알려진 다임 김혜경 대표(45). 그는 인생에 참으로 많은 굴곡이 있었다. 김 대표는 20대부터 화장품 외판원, 농산물 판매, 부동산 경리, 건축업 등 다양한 직업을 거치며 숱한 좌절과 실패를 겪었지만, 그 순간마다 희망을 가슴에 품고 오뚜기처럼 일어났다.

 

그래서일까. 김 대표의 첫 인상은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단아함이 풍겼지만, 대화를 할수록 강인한 의지와 열정이 담긴 아우라를 뿜어냈다.

 

현재 그는 이 모든 경험과 노하우를 녹여 만든 천연비누와 사랑에 빠져 있다. 10여년간 천연비누에 매달린 결과, 자연에서 얻은 추출물로 얻은 제품의 질은 물론 3천여가지의 다양한 디자인을 천연비누에 담고 있다. 이제 그는 라벤더 오일이나 허브와 같은 외국산 재료를 넘어 우리의 우수한 약초나 식재료를 원료로 한 한국만의 천연비누에까지 도전하고 있다.

 

■ 오뚜기 같은 인생 

 

김 대표는 24살에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과 결혼했다. 이후 남편은 사업을 벌였지만, 사정이 있어 곧바로 접어야 했다.

 

김 대표가 사회에 첫 발을 딛게 된 계기다.

 

사회경험이 전무했던 김 대표는 26살의 나이로 ‘보따리 장사’라 불리는 화장품 외판업을 시작했다. 또한 시댁의 농산물까지도 팔고다니는 등 닥치는대로 일했다.

 

이후 부동산의 경리 직원으로 일하며 부동산에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매물을 보여주러 다니며 드는 생각이 ‘집이 너무 안예쁘다’였다”며 “그때 집으로 올라오신 시어머니와 버스를 타고 가는데 ‘저 넓은 땅에 어째 우리는 바늘 꽂을 땅도 없을까’라고 한탄하셨다”고 말했다.  

 

이후 김 대표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땅을 매입하는 사고(?)를 쳤다.

 

김 대표는 “당시 은행에서 땅에 대한 대출을 80% 정도 해줘 어렵게 자금을 마련했다”며 “부동산 일을 하면서 본 도면들을 다 외워 설계의 바탕을 마련했고, 첫 작품치곤 마음에 드는 예쁜 집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집은 매물로 내놓자마자 곧바로 팔렸고, 김 대표는 집을 짓는 건축업자로 변신했다. 몇년간 여성의 몸으로 현장을 누볐던 김 대표는 주택과 다세대건물 50여채를 지으며 성공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정부의 부동산 규제와 세무조사가 한번에 겹치며 부도를 맞았다.어떤 이들은 사업이 부도나도 딴 주머니를 차기도 하지만, 한가지 일에 꽃히면 올인하는 김 대표는 망해도 제대로 망했다.

 

그는 “전세로 살 돈도 없어 아이들은 친정 언니집에 맡기는 등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고 회상했다.

 

■ 천연비누로 재기  

모든 것을 잃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김 대표는 재기할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때 취미로 시작했던 천연비누를 만났다. 처음 천연비누를 만들 때는 자신을 위해 만들어 사용했다.

 

김 대표는 “당시에는 얼굴에 기미가 생기는 등 너무나 안된 모습으로 변해있었다”며 “그러나 천연비누를 지속적으로 사용하자 피부톤이 맑아지는 등 효과가 있었고, 지금은 당시 10년 전보다 더 젊어보인다고 자부한다”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김 대표가 천연비누에 대한 사업을 해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다.

 

그러나 또다른 첫발을 내딛기는 쉽지 않았다.

 

지금은 천연비누, 수제비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어느정도 있지만, 김 대표가 사업을 시작한 10여년 전인 2002년에 천연비누 시장은 척박하고 낯설기만 했다.  

 

김 대표는 “처음 지인들에게 천연비누를 나눠줬지만, 이들조차 이를 한켠에 쌓아두고 사용하지 않았다”며 “자연에서 얻은 추출물로 만들어져 사용기한이 있는 제품이어서 더욱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때 김 대표은 비누에 디자인을 입히기로 결심했다.

 

그는 “모양이 예쁘면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모양의 비누에서 벗어나 세련되고 멋있는 비누를 만들어 도전하자”고 결심한 것. 

 

그는 비누에 디자인을 입히는 것을 ‘옷 디자인’과 같다고 비유했다.

 

그래서 그는 직접 비누의 틀을 만드는 몰드를 개발했고, 수천가지의 다양한 디자인을 입힌 비누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 또 한번의 위기, 다시 성공을 향해

 

천연비누에 대한 열정으로 품질과 디자인 개발에 올인했던 김 대표의 또다른 고민은 유통망 확보였다.

 

김 대표는 “유통업자와 손을 잡고 판로 확보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며 “마진을 많이 준 유통업자는 빌딩까지 살 만큼 수십억원을 벌었지만, 회사에 들어오는 수입은 겨우 상품 개발비 정도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결국 김 대표는 2년 전인 2009년 유통업자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김 대표가 새로운 상품을 내놓으면, 유통업자는 곧바로 중국에서 카피해 똑같은 제품을 더 저렴한 가격에 내놓았다.

 

김 대표는 “유통업자는 자본력도 영업력도 빈약한 내가 다시 항복하기를 기다리며 지리한 싸움을 걸어왔다”며 “당시 6개월에서 1년이면 부도가 날 것이라고 판단하고 싸움을 걸어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한달에 10~30개의 디자인을 업그레이드 해 끝없이 새로운 비누를 출시했고, 결국 소비자는 복제품보다는 원조인 김 대표의 비누를 선택했다.

 

이후 김 대표는 판로를 찾기위해 여성경제인협회, 중소기업청 등을 뛰어다녔고, 마침내 주변에서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 시작했다.

 

김 대표의 별님아씨 천연비누는 다른 상품과는 많은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제품의 퀄리티에 대한 자신감은 물론 3천가지가 넘는 다양한 디자인은 최고의 인기 비결이다.

 

또한 모든 공정이 수작업으로, 세밀하고 정교한 작업으로 만들어진 비누는 중국, 미국, 캐나다 등지로 수출되고 있다.

 

김 대표는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한국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며 “저희 별님아씨도 디자인과 한국인의 손 맛 때문에 중국에서 한 인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미꽃의 꽃잎 하나, 곰돌이의 눈동자 하나도 마치 살아있는 듯 세세하게 표현해내는 한국 사람들이 가진 손기술이 또하나의 인기 비결.

 

이와함께 내 아이가 쓰듯이 정성스럽고 곱게 만든 비누는 무방부제, 무색소 첨가물이라는 점. 그래서 다양한 색깔의 비누들은 모두 쑥이나 붉은 꽃 등 자연의 색으로 빚어낸 단순한 제품 이상의 작품으로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김 대표는 “숱한 좌절 속에 만난 천연비누는 평생을 함께 할 나의 동반자”라고 말을 맺었다.

 

이명관기자 mk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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