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계 어른’ 수원 봉녕사 승가대학장 묘엄스님 입적

마지막까지 “마음공부 하라” 당부… 다비식 3천여명 운집

 

수원 광교산 자락 봉녕사 승가대학의 학장이자 금강율원의 율주로서 이 시대의 한국불교 비구니 대강백이시자 청정율사이셨던  세주당(世主堂) 묘엄명사(妙嚴明師)가 지난해 12월 2일 오전 9시5분, 봉녕사에서 세수 80세로 입적했다.

 

묘엄스님은 친언니, 형부, 조카 등 가족들과 제자들이 지켜본 가운데 입적하면서 “마음공부는 상대적인 부처님을 뵙고 절대적인 나 자신을 찾으라”는 말씀과 함께 “자기를 단속하여 인천의 사표가 되고 생사에 자재하여 중생을 제도하라”는 유훈을 남기셨다.

 

이날 임종을 지킨 한 제자는 “마지막에 숨을 몰아 쉬시긴 하셨지만 평소처럼 편안한 모습이셨다”며 “척박했던 시대 속에서도 처절한 수행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전불심등(傳佛心燈)의 법맥과 함께 하신 한국불교 현대사의 산 역사와 같은 분이셨다”고 밝혔다.

 

영결식은 12월 6일 오전 수원 봉녕사에서 전국비구니회장으로 엄수됐다. 이날 영결식은 진제대종사, 고산대종사를 비롯한 조계종의 원로의원 스님들과 총무원장 자승스님, 중앙종회의장 보선스님, 교육원장 현응스님, 제2교구본사 용주사 주지 정호스님, 제11교구본사 불국사 주지 성타스님 등 사부대중 3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됐다.

 

영결식 직후 연꽃 상여로 장식된 스님의 법구는 대불광전에서 마지막 3배를 올린 뒤 다비장으로 이운됐다. 마지막 의식이 거행되는 동안 새끼줄과 장작더미로 마련된 연화대에 법구가 들어가자 도열해있던 문도스님들과 불자들이 “큰스님”을 외치며 흐느꼈다. 거화봉에 불이 붙여지고 거화와 함께 “큰스님 불들어갑니다” 합창과 함께 연화대에서 거센 불길이 솟아올랐다.

 

조계종 종정을 지낸 청담(淸潭·1902~1971) 스님의 친딸이며, 성철(性徹·1912~1993) 스님의 유일한 비구니 제자인 묘엄스님. 종단 사상 처음으로 비구니 스님 최고 지위인 ‘명사’ 법계를 받은 묘엄스님은 1931년 진주에서 태어나 1945년 대승사에서 월혜스님을 은사로 득도해 같은 해 대승사에서 성철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1958년 통도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각각 수지했다.

 

 봉암사 결사에도 참여한 스님으로, 성철스님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은 유일한 비구니 스님이기도 하다.

 

1970년대 폐사에 가까웠던 수원 봉녕사에 정착하면서 선원을 개설할 요량으로 맨 처음 선방을 지어 4년간 정진에 힘쓰다 1974년 강원을 설립하고, 강주에 취임해 후학양성에 힘썼다. 봉녕사 강원 개원 이후 40년간 학장을 맡아 현재까지 39회 8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한국 비구니교단의 미래를 밝히는 동량들을 양성해 왔다.

 

최근에는 사찰 음식의 대중화와 세계화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 2009년부터 사찰음식대향연을 열어왔다.

 

3회를 치른 봉녕사 사찰음식대향연은 사찰음식축제 중 대표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했으며, 스님은 지난해 10월 9일 행사 회향식에 직접 참석해 사찰 음식에 담긴 정신문화의 선양을 역설하기도 했다.

 

글_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_추상철기자 sccho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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