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치마 두르면 ‘천사로 변신’
“오늘 버섯볶음이 아주 맛있게 됐어요. 어르신들 맛있게 많이 드세요”
지난 12월 13일 점심시간, 수원시 송죽동에 있는 녹색복지회 무료급식소에 덩치가 있어보이는 중년 남성이 앞치마를 두르고 반찬 담기에 여념이 없다.
양복차림에 음식 담는 솜씨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한걸 보니 전문봉사자는 아닌 것 같고, 어르신들 물 한컵까지 일일이 챙기고 식판 설거지까지 말끔하게 해치우는 걸 봐선 한 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또 혼자 앉아 국에 밥 말아 드시는 어르신 옆에 앉아 “꼭꼭 씹어드세요”, “천천히 드세요”, “국좀 더 드릴까요”…. 이것저것 귀찮을 정도로 말을 거는 것을 보면 하루이틀 본 사이도 아닌 것 같다.
양복에 빨간색 앞치마를 두른 이 남자의 정체는 뭘까? 얼핏 봐도 샐러리맨 같아 보이는 이 남자는 노선욱(52) 기업은행 동수원지점장이다.
매달 둘째·넷째주 화요일 점심시간이면 어김없이 송죽동 만석공원 경로당 일대는 넥타이부대들로 북적거린다. 노선욱 동수원지점장도 그 중 한명이다. 노 지점장을 비롯해 수원지역에 소재한 기업은행 지점장들은 벌써 5년째 녹색복지회에서 독거노인 및 소외계층 어르신들의 무료급식봉사를 돕고 있다.
#32년차 은행맨의 화려한 변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노 지점장은 특히 봉사에 관한 남다른 철학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업은행맨으로 살아온 지 어느새 33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목포상고를 졸업하고 1979년 기업은행에 입사했다. 20~30대 청춘시절을 보냈고 아들, 딸 키우면서 가장으로서 보낸 시간도 은행과 함께 했다. 아빠따라 은행에 놀러오던 큰 딸이 올해 아빠 뒤를 이어 은행원의 길을 걷게 됐으니 30여년이 빨리도 흘러갔다.
노 지점장은 지난 2000년 서울에서 경기도로 내려와 평택 포승, 용인 흥덕을 거쳐 동수원지점에 정착했다. 수원에서만 7년간 근무해서인지 수원에 대한 사랑 역시 남다르다.
“수원은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입니다. 요즘엔 책상에 앉아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지점장이 직접 고객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고객을 찾아 다녀야 하니까요. 수원, 용인, 평택 등 지역 구석구석을 누비다 보니 곳곳에 많은 추억이 숨어 있고 아름다운 인연을 맺는 지역도 생겼습니다.”
사무실보다 현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노 지점장. 그런 그가 근무하는 기업은행 동수원지점은 전국 700여개 기업은행 지점 가운데 가장 많은 직원수를 자랑한다. 수원시금고뿐만 아니라 출장소까지 나가 있는 직원까지 합하면 80명에 달한다.
기업은행은 2010년 말, 연 1조5천억원이 넘는 자금을 4년간 운영할 수원시 금고은행으로 재선정되면서 동수원지점의 역할과 노 지점장의 임무도 막중해졌다.
46년간 수원시금고를 운영해 오는 동안 다져온 안정된 운영 노하우와 단 한차례의 금융사고도 낸 적 없는 신뢰성·투명성 등을 내세워 높은 평가를 받아온 만큼 노 지점장은 긴장감을 놓지 않고 은행업무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수원시의 각종 세입금의 수납, 세출금의 지급, 유휴자금의 보관과 관리 등 금고업무의 정확성을 물론이거니와 특히 수원시가 진행하는 각종 사업을 후원하는 등 사회적 기여에도 공을 들여왔기에 기업은행이 수원시민의 친근한 벗으로 자리를 잡은 지도 오래다.
바쁜 업무에도 불구하고 노 지점장은 봉사바이러스 전파에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봉사의 봉자도 모르는 그저 바쁘고 바쁘기만 한 직장인의 한사람이었다고 고백한다.
5년 전, 매월 두차례 녹색복지회 무료급식센터에 동료 지점장들과 배식 봉사를 시작하면서 봉사에 입문하게 됐다.
봉사초짜였던 노 지점장은 이젠 지역 어르신들의 큰아들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고향에 팔십이 넘으신 부모님이 계십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 뵙지도 못하고 안부 전화도 소홀할 때가 많습니다.
무료급식소를 찾아오시는 힘든 어르신들의 식사 한끼를 챙겨드리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모님께 대접한다는 마음으로 식사를 챙겨드리는데 요즘 같이 추운 날씨에 오히려 꽁꽁 언 제 손을 잡아주시면서 ‘고생이 많네’하고 응원해주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저절로 힘이 납니다.”
#나눔과 봉사활동으로 행복바이러스 전파
노 지점장은 봉사하러 갔다가 오히려 삶의 에너지를 얻고 온다며 봉사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는 봉사쟁이로 변신했다. 그의 변신에는 숨은 멘토가 있다. 5년 전 나눔을 전파하고 기업은행 수원지역 지점장들의 봉사활동을 진두지휘했던 윤상국 전 동수원지점장을 통해 봉사의 참의미를 깨달았다고 한다.
또 수원, 화성, 분당, 용인, 오산, 평택, 안성 7개를 관할하는 기업은행 경수지역본부 안홍열 본부장의 후원 속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을 몸소 느끼고 있다고 했다.
안홍열 본부장은 “조준희 IBK기업은행장이 현장경영 강화를 위해 2011년 경영 화두로 ‘우문현답’ 즉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를 강조했다”며 “책상에 앉아 서류만 뒤적여서는 중소기업과 고객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현장을 누비며 살펴봐야 제대로 알 수 있고, 이것이 기업은행의 강점이자 경쟁력입니다. 봉사또한 고객과의 눈맞춤의 일환인 동시에 지역사회와 하나되는 기업은행의 모습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방법 중 한가지인데 여기에 수원 지역 지점장들이 똘똥뭉쳐 모범적인 사례를 만들어내고 있어 오늘처럼 짬을 내서 같이 봉사에도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 지점장을 비롯한 수원지역 기업은행 지점장들의 봉사는 본부장까지 동참시켰고 12월 27일에는 기업은행 고객인 기업체 대표 10여명도 같이 어르신 무료급식 봉사에 동참하는 결과를 낳았다.
“봉사만큼 전염성이 강한 게 없더군요. 봉사를 하기 전에는 그 중독성을 몰랐습니다. 고객들께 봉사 다녀온 이야기를 했더니 같이 가자며 바쁜 일정에도 업체 대표들께서 흥쾌히 동행해 주셨습니다.”
노 지점장은 어르신 무료급식 배식봉사 뿐만 아니라 ‘사랑의 상품권’ 전달을 통해 저소득층 지원과 지역 서민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명절 때마다 관내 기초생활보장 수급세대에 쌀을 전달하는 등 지역 구석구석에 사랑을 전파하고 있다.
단순하게 돈만 버는 은행이 아니라 기업은행의 전통가치관인 상부상조 정신을 실천해 더불어 사는 사회건설에 이바지함으로써 사회와 함께 하는 최고의 은행이 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노 지점장의 목표이자 모토다.
5년 넘게 노 지점장을 알고 지낸 녹색복지회 이지현 회장은 “만날 때마다 봉사정신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낀다. 늘 보이지 않게 소외계층 지원에 힘쓰며, 나눔의 자리에 꼭 참석해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 지역을 위한 봉사, 사회 환원에 대한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는 사람”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삼사일언(三思一言)
세 번 신중하게 생각하며 한번 말하라는 뜻의 ‘삼사일언(三思一言)’, 노 지점장이 평소 가장 중요시 하는 사자성어다.
“삼사일언, 말에 대한 책임감을 강조하는 조상들의 가르침입니다. 말을 한다고 다 말이 아닙니다. 말은 그사람의 인격이며 사람간 소통의 종합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객과 상대방이 알아듣기 쉽고 표현이 상황에 맞는 적절한 언어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조직관리에 있어서도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닙니다. 중요한 포인트만 정리해주는 스타일입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기업은행의 사회공헌 및 상생활동에 솔선수범하고 있는 노선욱 지점장은 성금을 전달하고 생색내는 사회공헌이 아닌, 직접 찾아가 마음을 여는 활동과 살을 부비며 가족같은 따뜻함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수시로 강조한다.
따뜻한 사무실 책상이 아닌 추운 무료급식소를 찾는 지점장, 고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는 지점장, 2012년을 살아가는 노선욱 지점장의 모습이다.
글_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_전형민기자 hmjeon@kyeonggi.com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