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읽어주는남자] 조희룡의 홍매

지난주에 폭설이 내리더니 주말을 끼고 사나흘 풀렸다. 그러더니 다시 영하다. 기온이 이렇듯 널뛰기하는 것이 우리 겨울 날씨의 특징이다. 삼한사온인 것이다. 대륙의 고기압과 이동성고기압의 통과주기가 7일이어서 3일은 춥고 4일은 따듯한 것. 그러나 춥고 따듯함이 반드시 그 주기를 따르지는 않으니 각별히 몸조심할 일이다. 봄은 그렇게 삼한사온의 널뛰기로 올 것이다. 지난 토요일이 벌써 입춘이지 않았는가!

 

입춘과 더불어 오는 것이 꽃소식이다. 이른 꽃소식을 그림으로 먼저 전한다. 겨울과 봄 사이의 꽃은 매화가 제일이고, 19세기 묵장(墨場)의 영수 우봉 조희룡(又峰 趙熙龍)이 그 꽃을 잘 그렸다. 그가 쓴 ‘석우망년록(石友忘年錄)’에 따르면, 그는 지독히도 매화를 좋아해서 자신이 그린 매화병풍을 방 안에 둘렀고, 매화 읊은 시가 새겨진 벼루와 먹을 사용했으며, 매화시백영(梅花詩百詠)을 지어 큰 소리로 읊다가 목이 마르면 매화차를 달여 먹었다. 심지어 그는 자기 거처를 매화백영루(梅花百詠樓)라 짓고 자신의 호를 매수(梅?)라고도 하였다.

 

‘홍매(紅梅)’는 말년의 걸작이다. 두 개의 긴 세로 폭 종이에 그려 넣은 두 그루의 늙은 매화. 검은 먹의 힘찬 필법의 기운이 위아래로 솟구치며 등걸을 이뤘고, 그 사이를 붉은 매화꽃이 흩어지고 모였다. 등걸과 꽃이 조화를 이루며 꿈틀거리는 꼴이 마치 용트림이다. 이성미 선생은 ‘노수간(老樹幹)이 힘찬 용의 꿈틀거림’ 같다고 하였으니 사실보다는 뜻에 그림의 비법을 숨겼던 조희룡의 의중을 헤아릴 수 있다. 병과에 급제해 겨우 오위장에 올랐으나 19세기 대표적 여항시사인 벽오사(碧梧社)의 중심인물이었고, 헌종의 명으로 금강산의 명승지를 그리기도 했던 그. 그럼에도, 추사 김정희로부터 문자기가 없다고 꾸중을 들었으니 오죽했을까.

 

그는 죽어서 더 평가를 받았다. 그의 매화도는 조선 후기의 새로운 경지였던 것이다. 매화의 붉은 꽃은 새 삶을 꿈꿨던 조희룡의 유훈이었을지 모른다. 매화에 용을 품었듯이 우리 또한 입춘의 기운을 품어봄이 어떤가!

 

김종길 미술평론가ㆍ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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