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공장⑦] 배수아 소설가

생소한 텍스트 난해함에 중독되다

 

배수아의 등장은 한국 문단에 ‘낯섬’이었다. 작품세계를 거론하기 전에 그녀 자체가 독특하고 파격적인 인물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1988년 이화여대 화학과를 졸업한 배수아는 문학공부를 단 한차례도 받지 않은 무공해였다. 컴퓨터 학원을 다니면서 워드연습을 할때 머릿속에 떠오른 픽션을 그대로 타이핑하기로 것(?)이 그녀의 데뷔작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1993년 ‘소설과 사상’ 겨울호)이되고 말았다.

세계문학전집을 끼고 살았던 문학소녀도 아니요, 신춘문예 시즌에 가슴앓이를 했던 인물도 아니다. 안정된 공무원 생활을 하다 전업작가가 된 반전의 주인공이 바로 배수아.그래서일까. 배수아의 작품은 호불호가 분명했다. 소수의 마니아층을 둔 행복한 작가임은 분명하다.

90년대를 대표하는 신세대 작가로 조명받았다. 특이한 작가 스타일과 작품 덕에 신작 출간 때마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도 섭섭치 않게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유독 상복이 없었고 일부 평론가들에게 난도질 당하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책이 수십만부씩 팔려 인쇄를 두둑하게 챙긴 것도 아니다.

배수아는 스토리에 연연해 하지 않고 꾸밈없는 이야기 위주의 글쓰기 스타일을 10년 넘게 변주와 진화를 이어오고 있다. 우리 문학계에 특이한 위치에 살고 있는 배수아의 신작 장편 ‘서울의 낮은 언덕들’(자음과모음)도 기묘하고도 생소한 텍스트로 독자들에게 인사한다.

신작과 함께 독일에서 온 배수아 작가는 지난 2월 8일 저녁 홍대에서 독자들과 함께 했다. 조용한 음성과 절제된 단어로 그녀는 자신의 신작과 독일 이야기를 이어갔다.

 

불(?)친절한 수아씨

배수아,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흐름 속에도 유난히 낯설고 독특한 모습으로 등장했던 작가는 그후 18년 동안 6권의 소설집,13권의 장편소설, 1권의 에세이, 여러 독일어 번역문학을 쉼 없이 선보이며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로, 번역문학가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갔다.

그 과정에서 배수아는 내러티브 소설 작법에 따르지 않고 배수아 고유의 독특하고 견고한 문학적 세계를 창조했다.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호불호가 확연히 갈리던 작가답게 이번 신작 ‘서울의 낮은 언덕들’도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은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경희’라는 이름을 가진 30대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한국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낭송극 전문 배우라는 특이한 직업을 가진‘경희’는 성우와 아나운서 등에 밀려 일거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독일어 선생이었던 사람이 죽음을 앞뒀다는 소식을 들은 ‘경희’는 무작정 그를 찾아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새 장편 ‘서울의 낮은 언덕들’…이질적 목소리를 통해 펼쳐지는 기묘한 여행

그 여행을 ‘걸어서’ 하겠노라는 ‘경희’의 결심은 비록 하루만에 그친 것으로 묘사된다. 표면적으론 30대 여성의 여행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건 착각이다. 소설 마지막장을 넘기기까지 꽤나 많은 인내심을 요구하는 작품이다. 솔직히 만만치 않다.

단촐한 여행가방을 들고 낯선도시의 공항에 도착한 ‘경희’는 그곳에서 ‘미스터 노바디’, ‘마리아’, ‘반치’, ‘치유사’ ‘동양인 남성’ 등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특정한 이름으로 좀처럼 호명되지 않으며 어떤 존재인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종종 화자는 명확한 기준 없이 주인공 ‘경희’에서 갑자기 ‘우리들’이라는 구체적으로 정의되지 않는 주체의 복합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에세이형 소설’, ‘소설과 에세이의 혼종’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배수아만의 비서사적 소설세계를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다.

그래서 뚜렷한 이야기를 찾을 수 없는 ‘비서사적 소설 세계’를 들려주는 형식은 배수아 소설을 접하지 않았던 독자라면 버거운 게 사실이다.

 

아마 시간적 순서대로 진행되는 스토리 위주의 소설에 입맞들여져 있던 독자는 에피소드를가 끊기면서 난해함에 빠져있을 때쯤 서서히 드러나는 소설 윤곽이 드러나는 이야기는 ‘어렵다’고 아우성 친다. 왜냐하면 소설에는 상투적인 인물, 상황, 대사, 통찰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어떤 평론가는 ‘올해 출간된 한국 소설 가운데 가장 난해하고도 극적인 소설’로 규정하기도 했다.

“독자들에게 불친절한 거 아니냐”는 질문에 그녀는 강하게 부정했다.

“사실 억울해요. 친절하지 않다고 생각해 보지 않았다. 친절합니다.(하하) 사람들이 소설 읽기가 힘들거나 문장이 길어서 친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제 작품을 읽고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대화가 아니다’,‘장황한 문체가 힘들다’, ‘스스로 독자를 밀어내기 위해서 쓴 거 아니냐’등의 말을 들었을 때 매우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어요.

아마도 비판의 형태를 취한 비난을 가장 많이 받았던 작품이 ‘북쪽거실’(문학과지성사)이었던 것 같은데 이번 ‘서울의 낮은 언덕들’은 너무 쉬워서 하찮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작품입니다. 제 문학이 유난히 힘들다는 생각은 안 하는데…. 그냥 운명인가봐요.”

그녀는 자신을 은둔형의 불친절하고 비타협적인 작가로 보는 시선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판단이라고 했다.

“작품을 쓸 때 취재를 해서 이야기를 쓰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일부러 은둔을 자처하지도 않고 독자들과 거리를 두려고 하지도 않는데. 은둔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왜 소설을 쓰고 시장에 왜 내놓을까요? 그럴

꺼면 일기를 쓰죠.”아마도 작품을 쓸 때 자신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집중해서 쓰는 배수아의 스타일이 독자들에겐 다소 ‘읽기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거 아닐까.

또 너와 나, 여성과 남성, 어른과 아이, 부자와 가난한자, 과거와 현재,우리와 타인, 한국과 외국 등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작가세계를 ‘마이너리티’라고 간단하게 말하는 이

들이 봤을 땐 배수아의 작품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독일과 한국 사이

2001년까지 공무원생활을 했던 배수아는 그동안 ‘랩소디 인 블루’, ‘부주의한 사랑’,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등의 장편소설을 내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면서 1990년대 한국 소설의 새로운 문법을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런 그녀가 최근 몇 년 사이 독일을 오가며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지난 겨울도 독일작가 제발트의 책 2권 붙잡고 살았다. 배수아의 또다른 직업은 번역가.“독어 전공자는 아니예요. 30대 후반, 독일에서 1년 정도 거주할 기회가 있었어요.

독일어를 배우기 위해 독일에 머문 건 아니었구요. 독어를 배우면서 늦게 배우는 것이 더 큰 효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하하) 서둘러서 빨리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녀만의 독특한 색깔 ‘열혈 독자군’ 거느려

 

그녀는 평론가의 추천으로 W.G. 제발트(1944~2001)의 첫 작품인 ‘자연을 따라, 기초시’를 읽고 그에게 열광하게 되었다고 한다. 배수아를 ‘매혹시킨’ 제발트는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현대작가였다. 그러나 2001년 영국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비운의 작가다.

“제발트는 우리에게 낯선 이름이지만 오늘날 독문학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제2차 세계대전 후 최대의 산문 작가라 불릴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예요.

4명의 이민자가 차례로 등장하는 연작 산문 혹은 단편 형식을 취한 제발트의 두 번째 장편인 ‘이민자들’과 고향을 잃은 유대인 소년이 기억을 찾아가는 장편소설 ‘아우스터리츠’와 1995년에 발표된 그의 세번째 소설 ‘토성의 고리’가 국내 번역출간됐어요.”제발트를 배수아는 무척이나 좋아한다. 짝사랑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국적을 떠나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행복해요.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는 일에 있어 고난과 부담스러운 측면이 많지만 개인적 차원에서 한눈에 사로잡혀버릴 정도로 좋았던 작품이라 행복한 경험을 한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제발트의 문학테스트는 5권 정도 밖에 없다. 기존에 번역출간된 제발트의 작품과 독문학자가 아닌데 제가 번역했을 때 비교될 것이 분명한데 엄청난 부담감은 나중의 문제였어요.(하하)”문장이나 줄거리 자체라기보다는, 독특한 진술 유형을 구사했던 제발트에 푹빠진 배수아, 적잖은 영향을 받았을터.

배수아가 최근 몇년새 ‘비서사적 소설세계’에 빠져 있다는 오해를 받는 것도 어찌보면 제발트에서 찾아볼 수도 있다.

“작가로서의 삶은 불과 11년이지만 제발트는 마치 한 편의 산문시처럼 흐르는 독백들이 장점인데 어떤 독자들은 지나치게 정적이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지만 저는 제발트가 그냥 좋아요.”

작가 손에는 제발트의 사진이 들려 있었다. 열혈팬임이 확실하다. 공무원생활을 접고 3~4개월씩 독일에 체류하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배수아. 이래저래 독일과 남다른 인연을 맺고 있는 그녀지만 정작 독일 여행기를 다룬 책이나 본인이 등장하는 책은 기대하기 어렵다. 핑계를 댄다. “전 게으른 사람이예요.”, “여행도 돈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체험과 사실성이 강조되던 우리 문학사에서 독특한 문체와 색깔로 열혈 독자군을 거느려 왔던 배수아는 이번 신작에서도 사유하는 문장의 힘으로 새로운 독자들과도 만나고 있다

 _ 강현숙 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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