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공장 ⑨] 전민식 소설가

고백하건대 나는 나쁜남자다 …

올해 ‘제8회 세계문학상’ 최종 심사는 어느 때보다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와 ‘항연’, ‘꽃의 기억’ 세 편으로 압축된 최종심사에서 박범신, 김형경, 은희경, 서영채, 방현석, 김미현, 김별아 총 7명의 심사위원은 검토와 논의 끝에 투표에 돌입했다.

투표 결과, 4표를 받는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가 3표를 얻는 ‘향연’을 단 한표 차로 누르고 최종 당선작으로 결정됐다.

아슬아슬하게 행운을 거머쥔 주인공은 20년을 무명작가로 살아온 전민식(47)씨다. 무명과 유명의 딱 경계선에 서 있는 전 작가를 식목일인 4월 5일 파주출판단지에서 만났다. 작가는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친절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오픈했다.

“아버지 영전에 바칩니다”

그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지지리 복도 없는’ 캐릭터 그 자체였다.

대학시절 그러니깐 1997년부터 각종 신춘문예, 문예지 등에 도전했다. 국내 내로라하는 문학상에도 빠지지 않고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번번히 그의 편이 아니었다. 이번만, 이번 한 번만…. 그렇게 스무 해를 보냈다.

그러다보니 ‘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식당에서 불판을 닦고, 공사판에서 모래도 푸고, 이삿짐센터에서 짐도 나르고….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닥치는대로 했다.

그의 손 역시 쉬는 날이 없었다. 대필작가로 한의학 서적부터 논문, 자기계발서, 유명 연예인과 공무원 심지어 조직폭력배 큰 인물의 자서전까지 집필했다.먹고는 살아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왜 그렇게 사느냐는 핀잔도 숱하게 들었다”는 그는 이제 그만 포기하라느니, 언제까지 대필작가로 살거냐는  소리를 들을 때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지만, 그냥 귀를 닫고 살았다고 고백했다.

올해 세계문학상 최종심에서 또 고배를 마셨다면 그는 어떻게 됐을까? 심사위원의 단 한 표로 작가가 됐다. 

“문학동네작품상, 작가세계문학상, 중앙장편문학상, 세계문학상 등 9번 떨어졌다. 매번 최종심에 올랐지만 미끄러졌다. 7전8기도 아닌 9전10기의 주인공이다.

떨어지고 나서 심사위원 욕도 했다. 솔직히(하하). 당선 소식을 듣고 아내 부둥켜 안고 펑펑 울었다. 지난 2월 29일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 글쓴답시고 평생 자식노릇 한번 제대로 못하 걱정만 끼쳐드렸는데 마지막 가시는 길 첫번째 책을 안겨드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는 20년을 기다려온 등단 소식 후에 아버지를 저 멀리 보내드려야 했다. ‘한우물을 파면 결국엔 이루어진다’는 평범한 진리가 통했다. 운 좋게 말이다.

‘9전10기’ 끝에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세계문학상 수상

솔직히 무슨 깡으로, 용기로 여기까지 버텨왔는지 제일 궁금했다. 아내도 있고 아들도 있는 대한민국 가장 아닌가.

“몇 년 전 동생이 해외 주재원으로 일하다 죽었을 때가 최악이었다. 그 당시 나나 아내나 둘 다 일을 하고 있지 않아서 수입이 전혀 없었다. 3개월간 전화 발신금지가 된 상태였다. 동생의 죽음을 알려야 하는데 전화를 할 수 없었다. 결국 장농을 들춰내 동전 몇 개를 찾아서는 겨우 공중전화로 연락을 할 수 있었다.

 

그때는 정말 내가 고집스럽게 이 길을 가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써왔다.”

이 대목에서 “글쓰느라 가장으로서 경제적으로 무책임하지 않았느냐” 라는 피곤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날카롭게 자존심을 세우고 세상의 모든 숭고한 가장들이 해내는 일을 하지 않았으니 한마디로 나는 나쁜 남자다. 먼저 작가 생활을 시작한 아내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삶이었다. 워낙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고 자체가 긍정적이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운 게 이 바닥의 생리다.”

긍정의 힘으로 20년을 버텨왔다는 작가. 그러나 제3자가 봤을 땐 아내의 덕이 커보인다.

모두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삶이 시작되었다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은행나무 펴냄)는 컨설턴트로 승승장구하면서 잘 나가던 주인공 ‘도랑’이 단 한번의 실수로 나락으로 떨어져 65킬로그램의 고급 애완견 ‘라마’를 산책시키는 일을 하면서 인생역전을 꿈꾸는 이야기다.

주인공부터 소설전반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소위 말하는 ‘사회적 약자’나 ‘루저(loser)’다. 평생 폐차장에서 도둑질만 하다 떠난 아버지, 불법으로 개도축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 수시로 파출소를 드나들던 어머니, 빚만 남기고 자살한 큰형, 한국이 싫다며 인도 문드라로 떠난 작은형이 ‘도랑’의 가족 프로필이다. 그냥 프로필만 봐도 피로감이 확 밀려오는 캐릭터들이다. 

할머니와 동생을 부양하며 식당과 술집, 캐셔 일을 전전하는 ‘미향’은 뭇 남성들에게 유혹을 받지만 끝내 사랑만은 팔지 않는다.

아내와 두 자녀를 모두 잃은 ‘삼손’은 자살방지클럽(자살자가 많아 자살클럽으로 오인받지만)을 운영한다.

가짜 가족을 만들어 이상적인 결혼을 꿈꾸었던 ‘은주’는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이처럼 작품은 고달픈 현실 속에서도 자신만의 ‘보루’를 가지고 자기 앞에 놓인 삶을 꿋꿋하게 감당해 가는 인간군상의 희비애락을 애정 어린 성찰로 녹여 내고 있다.

특히 부잣집 개를 산책시키며 운동거리, 먹은 간식의 양, 소변이나 대변 활동, 이상 행동 등에 대해 꼼꼼하게 아이패드에 기록하는 일, ‘도랑’의 지극히 인간적이며 비루하고 치사한 내면의 방황을 리얼하고도 진솔하게 그려내 폐부를 찌른다.

그의 첫 장편소설엔 기발하고 파격적이고 기막힌 반전은 없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인물의 자잘한 에피소드가 애잔함과 감동을 준다.

“주인공 ‘도랑’은 실제로 아는 컨설팅업체 인물을 모델로 한 것이다. 특히 ‘삼손’이라는 캐릭터의 경우, 예전에 같이 이삿짐센터 일하면서 만난 손가락 세 개를 가진 아저씨를 모티브로 했다. 이사하면서 버려진 책들을 주워 읽어서 정말 박학다식한 분이었다.”

전 작가는 ‘멋을 부리는’, ‘있는 척하는’ 글쟁이는 아니었다. 20년을 글만 써온 이로서 본인처럼 하루하루를 기적처럼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이번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도 단 1%의 이야기를 99%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대한민국의 99%를 위한 글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정서를 지닌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

심사위원단(박범신·방현석·서영채·은희경·김형경·김미현·김별아)은 작품에 대해 “상처 입은 존재들이 패배 속에서도 만들어내는 치유의 풍경을 훈훈하게 그린, 사람 냄새가 나는 소설”이라며, “인간에 대한 이해와 정서를 지닌 소설로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패배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파토스로 작용해 감동을 준다”고 평했다. 또한 방법론적으로는 언어나 플롯의 낭비 없이 경제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웰 메이드’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전 작가의 첫 장편소설엔 기발하고 파격적이고 기막힌 반전은 없다. 넘어지고, 깨지고, 혼나고, 실패하고, 망하면서도 끊임없이 도전하는 등장인물들의 자잘한 에피소드가 애잔함과 감동으로 한자리를 크게 꽤차고 있다.

47세 늦깎이 작가의 감동퍼레이드는 이제 시작이다.

“대학 졸업 후 오로지 글만 쓰기 위해 취직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 긴 세월 나와 같이 최종심사에서 수차례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한 장편과 단편소설이 있다.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많은 알토란같은 작품들이 다 내 자식새끼나 다름 없다. 그 자식(작품)들 앞에서 무명작가, 대필작가가 아닌 전민식으로 당당해지고 싶다. 올해부터 신명나게 쓰고 싶다.”

그는 긴 세월을 조용히 견디며 나쁜남자로 고집대로 살아갈 수 있게 지켜봐준 소설가이자 아내인 최민경과 아들 예준이, 그리고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99%를 위해 오늘도 귀를 닫고 글을 쓴다.

글 _ 강현숙 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 _ 추상철 기자 sccho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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