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사 혜성 주지스님 "정파·종파 넘어선 복지사업에 여생 걸 것"

“정이 그리웠습니다. 네 살때 어머니를 여위고 외롭게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 같아요. 저 같은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출가를 결심하게 된 겁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는 울기도 하고, 때를 쓰기도 하고, 때때로 다른 아이에 해코지를 하기도 한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다. 대개의 아이들은 그렇다. 그런데 사무치는 외로움을 마음속 깊이 묻고, 오히려 사랑을 베풀어야겠다고 결심한 아이가 있다면. 마음가짐부터가 범상치 않다. 최근 열반한 스님들도 받기 힘들다는 태고종 최고 품계인 대종사 법계를 받은 무학사 혜성 주지스님(70)의 이야기다.

“종단의 가당치않은 결정에 몇 번이나 고사했다”는 겸손함만큼이나 그가 보여준 중생을 향한 사랑의 행로는 우리의 시선 아래에 깔려 있다.

수원북중과 수원농고를 졸업하고 공무원 생활을 하던 그는 29세가 되던 해 출가를 결정했다. 가족들의 만류가 거셌지만, 오래도록 품은 그의 큰 뜻을 꺽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태고종에 입문한 혜성은 그가 나고 자란 수원 칠보산 자락에 무학사를 창건하고 수행에 들어갔다.

 

“그때만해도 먹고 사는 게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한 끼 대접해 드리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좋아들 하셨던 거 같아요.”

어버이날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80년대 초, 어린이날이 되면 그는 인근의 노인과 어린이들을 무학사로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고 아이들에게는 학용품을 나눠줬다. 많을 때는 500여명이 몰려들었다. 그의 사랑나눔의 시작이었다.

이후 30여년 동안 매년 권선구 지역 소재 초등학생들을 선발해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으며, 지역내 고부간 사이가 좋은 며느리들을 추천받아 효부상을 주며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또 어린시절의 외롭던 기억 탓일까. 스님은 아이들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그는 직접 어린이집을 개원해 인근 어려운 가정 형편의 아이들을 도맡았다.

“우선적으로 어려운 집 아이들을 배정합니다. 그리고 선생님들께는 항상 ‘내 친자식처럼 돌봐달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비와 사랑’을 기본으로 하는 그의 운영 철학 덕분에 지난해에는 수원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시립어린이집까지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평생 남을 먼저 생각하고, 어려운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살아온 혜성 스님. 그런 그가 지난달 20일 (사)사회복지발전협의회 이사장을 맡으면서 헌신적 삶의 종지부를 찍을 준비를 하고 있다.

혜성 스님은 “사회복지발전협의회는 재계, 언론계, 정계, 교육계, 종교계, 시민단체계 등 모든 정파·종파를 떠나 지역의 모든 역량을 모아 복지사업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며 “복지단체에 조차 눈길을 받지 못하는 곳처럼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내 남은 여생을 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7일 창립 발기인 대회를 가진 사회복지발전협의회는 내달 무학사에서의 ‘장애인을 위한 산사음악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윤철원기자 ycw@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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