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나는 60년 앉은뱅이였는데… 왜”

김종구 논설실장 kimj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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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60평생 앉은뱅이였어. 갑자기 벌떡 일어나는 기적이 일어난 것도 아니잖어. 그런데 왜 20년만에 장애등급이 1등급에서 2등급이 된 거냐고.”

딱했다. 김씨(61·인천시 연수구)는 평생을 앉아서 지냈다. 손재주가 뛰어나 젊은 시절엔 악사(樂士)로 돈을 벌기도 했다. 하지만 노래방 기계가 들어온 뒤부터는 이마저 끊겼다. 아무 일도 안 한 지 벌써 15년째다. 딸(19)은 기본학업을 이어가기도 버겁다. 부인(52)의 허드렛일은 한 달에 열흘 잡히면 다행이다. 김씨의 목소리는 하소연이 아니라 분노로 가득했다.

‘뭔가 착오가 있겠지’라던 판단은 착각이었다. 연수구에 취재해 볼 필요도 없었다. 김씨만의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장애등급 판정 방식이 바뀐 건 2011년 4월이다. 1989년 이후 22년만의 개정이다. 개정의 취지는 ‘엄격한 판정’이었다. 이를 위해 의사가 하던 판정을 국민연금공단(장애심사센터)으로 넘겼다. 심사강화라는 말 속엔 가짜를 가려내겠다는 뜻이 있었다. 백번 옳은 선택이다. 줄줄 새는 혈세를 막는 게 국가의 의무다. 하지만 판을 펴놓고 보니 그게 아니다. 엄격한 심사라는 말은 까탈스러운 심사를 말하는 거였고, 허수(虛數) 정리라는 말은 전수(全數) 축소를 뜻하는 거였다.

장애인 등급 하락 3만3천명

앉은뱅이 생활이 60년 동안 바뀐 적도 없고 나아진 적도 없다. 그렇다고 등급 판정의 기준이 바뀌지도 않았다. 바뀐 거라곤 의사에서 연금공단으로 변한 심사주체뿐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등급이 하락했다. 김씨만의 얘기가 아니다. 무려 3만3천여 장애인이 등급하락의 날벼락을 맞았다. 재심사를 받은 9만3천여명 가운데 36.7%다. 작정하지 않고서야 이렇게 무더기 하락이 나올 리 없다. 그렇다고 3만3천여명 모두가 가짜 등급자였다는 어떤 근거도 없다. 기껏 한다는 얘기가 ‘억울한 장애인이 있을 수 있으니 이의신청을 해달라’다. 무슨 국가 정책이 ‘억울할 수도 있는 사람’을 40%나 만들어내나.

에둘러 말할 필요 없다. 복지 예산 충당하려고 장애인 복지에 손댄 것이다. 심사 강화 방침이 알려졌을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오판술 연금공간 장애등급센터장도 2010년 “예산 줄이기 위해 장애등급을 하락시키지는 않겠다”고 해명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가 우려했던 쪽이다. 장애인 40%에게 등급하락의 철퇴가 내려졌고 그만큼의 예산이 국고로 들어갔다. 장애등급 판정제도 개선은 장애복지 예산을 줄이려고 시작한 것이다. 그 악역을 위해 의사를 제치고 연금공단이 나선 거였다.

보편적 복지 예산 돌려막기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보편적 복지 왕국을 꿈꾼다면서 기본 복지 예산을 뺏어 가는 나라다. 앉은뱅이 지원금 뺏어 재벌 손자에게 밥 주는 나라고, 정신병자 등급 낮춰서 재벌 손녀(0~2세)의 보육비 대주는 나라다.

이래놓고도 이런 말만 하면 펄쩍 뛴다. 저 돈과 이 돈은 다르다고 말한다. 도대체 뭐가 다르다는 얘긴지…. 어차피 국부(國富)란 오크통속에 채워진 포도주다. 한 귀퉁이 널빤지가 떨어져 나가면 그 자리까지 포도주는 빠져나가는 거다. 이 널빤지 저 널빤지의 용도가 따로 있지 않다. 무상급식에 쓰일 예산 따로 있고 장애인 복지에 쓰일 예산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이 뻔한 공식을 알면서도 모른 척 외면하겠다는 논리, 복잡한 예산 피라미드 뒤로 숨으면 국고가 거덜날 때까지 눈치 채지 못할 거라는 논리, 이 논리가 바로 보편적 복지가 입 닫고 있는 교활한 술수다.

김씨의 방에는 문턱이 없다. 앉아서 이동해 온 세월의 흔적이다. 그 한(恨)도 인정받지 못해 장애등급이 박탈됐다. 애써 이유를 따질 일이 아니다. 돈 없이 벌려놓은 보편적 복지를 위한 예산 돌려막기의 시작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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